21년간 닥종이 인형 제작 헌신…"혼·정성·인내·창의가 빚은 결과물"
3·1절 100주년 미국서 만세운동 전시 등 해외서 한국 문화 전파 산파역
"인형은 그 나라 문화적 상징물…전통 문화산업 성장에 기여하고 싶어"
박봉덕 공예 명장 |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닥종이 공예에는 한국인 정서와 얼이 그대로 녹아 들어 있습니다."
부산 서구 서대신동 꽃마을에 있는 구덕문화공원 다목적관 내 박봉덕 닥종이 인형 갤러리.
김장하는 모습의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초가집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김장하는 마을 아낙네들의 토속적인 모습은 정겹기만 했다.
머리에 하얀 두건을 쓰고 생활 한복을 입은 여인들의 표정에는 해학적인 면이 묻어났다.
닥종이 공예 전시 |
아주 작은 크기에도 섬세하게 표현한 배추와 무, 당근 등은 마치 실물을 보는 듯했다.
모두 닥종이로 만든 전시작품으로 당시 시대상과 풍습을 한눈에 엿볼 수 있었다.
갤러리에서 만난 박봉덕 관장은 21년간 닥종이 인형을 제작하고 교육을 해온 종이공예 전문가다.
그는 우리 전통을 느낄 수 있는 닥종이 인형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부산을 한국 닥종이 공예산업의 거점으로 키운 공로를 인정받아 부산시로부터 2020 공예 명장(종이분야)에 선정됐다.
가야금 연주 닥종이 공예 |
"닥종이 공예는 나전칠기 등 다른 전통 민속공예 못지않게 고도의 표현 기법과 창의력, 정교하고 섬세한 작업 기술이 필요합니다. 혼과 정성, 땀이 배어 들어가야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전통 민속공예입니다."
수많은 과정의 결과물인 닥종이 작품에는 그의 애정과 애착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닥종이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전통 한지)다. 일반 종이와 달리 물을 머금으면 아주 부드럽게 되지만 쉽게 찢어지지 않고 말리면 아주 단단하고 질기고 견고해지는 특징을 지닌다.
닥종이 인형은 풀을 바른 한지를 찢어 겹겹이 붙이고 말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완성된다.
곰팡이가 생길 수 있어 건조하고 다시 작업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제작과정 설명하는 박봉덕 명장 |
박 명장은 전통 한복을 제작하는 인형 봉제법과 형상변경(관절)이 가능한 인형 제작 기술과 관련해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30년 전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박 명장은 독일에서 활동한 닥종이 공예가 김영희 작가의 소설 '노란 민들레' 글과 삽화를 보면서 닥종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박 명장은 한국 전통 이야기 심청전, 흥부와 놀부, 콩쥐밭쥐 등에 등장하는 인물을 인형으로 만들었다.
6·25 전쟁 때 전국 각지에서 부산으로 몰려온 피난민의 희로애락을 닥종이 인형으로 표현한 '60∼70년대 그 시절 이야기'는 박 명장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다.
닥종이 공예 |
코흘리개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물동이를 줄 세운 공동수도, 군 고구마 장수, 냄비 수선, 뻥튀기 아저씨, 짚신 짜기, 달동네 판자촌 등 지금은 볼 수 없는 장면을 재현했다.
인형으로 우리 전통 이야기와 역사적인 인물, 문화유산 등을 친근하게 표현한 닥종이 공예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선수촌에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닥종이 공예전을 열기도 했다.
부산시교육청, 구청, 검찰, 문화회관 등 공공기관에서 닥종이 전시회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미국,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닥종이 전시회 초청 행사를 열거나 전시회 요청을 받기도 했다.
미국 뉴저지주 3·1 만세운동 닥종이 공예 전시회 |
2019년 3·1절 100주년을 기념해 미국 뉴저지주에서 3·1 만세운동을 재연한 닥종이 인형전을 열어 주목을 받았다.
박 명장은 "미국 현지에서 한국 닥종이 공예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며 "대한민국 만세운동 작품 50여 점을 현지에 기증했고 외국인들이 공예작품을 많이 구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닥종이 인형으로 만나는 전래동화 이야기 3편을 출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청소년과 성인들을 상대로 하는 닥종이 공예 교육으로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 명장은 "종이로 인형을 만들면 학생들에게는 집중력이 생기고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활기를 되찾게 된다"며 "노인들도 치매와 고독사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인형은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됐고 한 나라의 문화와 전통 생활 양식을 보여주는 문화적 상징물"이라며 "우리 전통 인형을 해외에 전시해 한국 문화를 알리고 수출을 위한 상품 개발과 판로개척을 통해 전통문화산업 성장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ccho@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