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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이슈 라임·옵티머스 사태

2조원대 희대의 금융사기극 ‘라임·옵티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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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장사 좀 하게 규제 풀어주세요.”

2조원대 ‘희대의 금융사기극’의 불씨는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육성책에서 나왔다. 2015년 10월 27일 금융투자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금융개혁추진위원회에 모인 금융투자업자들은 개인의 사모펀드 투자기회를 확대하고 사모투자 재간접 펀드 도입을 허용해달라고 정·관계에 읍소했다. 지금 사모펀드 대란의 불씨가 되는 장면이다. 때마침 자본시장의 역동성을 끌어올리고 모험자본 투자를 활성화하려 했던 금융위원회는 업자들의 요구에서 착안해 규제 완화 틀을 수립했다. 금융위는 전문사모운용사 설립 제도를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자기자본 요건도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다시 10억원으로 재차 낮췄다. 너도나도 전문사모운용업을 신청했다. 그 결과 2014년 10곳에서 2019년 217곳으로 20배 불어났다. 문제는 검증되지 않은 업체들이 유입되면서 편법·불법 운용도 같이 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잉태된 문제의 사모펀드들은 당국의 규제 완화와 저금리에 증식을 갈망하는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며 덩치를 키웠다. 특히 지금의 사모펀드 사태의 온상지인 헤지펀드 규모는 2015년 200조원에서 지난해 416조원으로 급속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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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10월 21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옵티머스 펀드금융사기, 책임 방기한 금융당국과 금융사 규탄’ 기자 회견을 하고있다. / 우철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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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불어난 자산 투자처 확보 실패
문제의 쌍둥이 사건 ‘라스(라임자산운용·옵티머스자산운용)’는 펀드의 세부 구조가 비공개되는 사모펀드에서 발생했고, 정·관계 로비가 얽혀 있다는 점이 같다. 저금리에 매력적인 수익성도 시중 유동성을 자극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라임자산운용은 부실 펀드의 자산을 멀쩡한 다른 펀드 자금으로 사들이며 수익이 계속 나는 것처럼 포장했고, 옵티머스자산운용은 아예 보유하지 않은 자산을 내세워 투자 자금을 끌어모은 뒤 부실 사모사채에 투자하거나 부동산 개발에 썼다. 총 2조1000억원대 환매 중단 사태를 야기한 두 사건은 한국 금융정책과 규제의 한계 및 금융인의 도덕적 해이를 여실히 보여준 ‘금융흑역사’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라임의 경우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 한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설립된 라임은 초창기엔 안정적으로 고수익을 내는 헤지펀드로 입소문을 타면서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트랙레코드(수익률)가 받쳐준 결과였다. 당시 금융위는 ‘한국형 헤지펀드’란 정책브랜드를 내세웠다. 이런 타이틀을 달고 탄생한 라임은 한때 헤지펀드 업계 1위로 이름을 날리는 등 강소 자산운용사의 성공 케이스가 됐다.

이렇게 시장의 신망을 얻은 라임의 펀드 설정액은 2016년 말 2446억원에서 2018년 말 3조6226억원, 2019년 7월 5조8672억원까지 불어났다. 걷잡을 수 없이 시중 유동성이 유입되자 그때부터 라임의 고민은 깊어졌다. 자금 규모가 작을 때는 그럭저럭 투자처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덩치가 불어나면서 수익을 낼 만한 투자대상을 찾기 어려워졌던 것. 라임은 부실 가능성이 높고 환금성이 낮은 비상장사 채권이나 무역금융 등으로 투자범위를 넓히면서 위태로운 부실의 길을 걷게 됐고, 급기야 폰지(돌려막기)로 개인 투자자 4000여명에게 1조6000억원대 피해를 입힌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0일 라임 설립 8년여 만에 사업자 등록을 취소했다. 금감원이 지난해 8월 첫 조사에 나선 지 1년 2개월 만이다. 라임의 주요 임직원은 모두 구속된 상태다. 펀드운용 과정에서 증권사와 손잡고 펀드부실을 알고도 이를 무마하는 등 다수의 불법혐의도 발각됐다. 해당 펀드판매 증권사, 은행 등 판매사에 대한 강력한 제재도 뒤따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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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 공적 이미지 덧씌워 ‘착시현상’
옵티머스는 라임보다 악질적인 사고다. 펀드 조성 당시부터 속임수를 통해 시중 자금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옵티머스는 우량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속이고 1조5000억원대 펀드 상품을 팔아 실제로는 대부업체와 부실기업,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수익을 돌려막기했다. 펀드 사기를 꾀하는 과정에서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대한 투자란 공적 이미지를 덧씌워 투자자들의 착시현상을 의도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대한 투자라고 안심시킨 뒤 연 3% 안팎의 안정적인 수익률을 제시했다. 과도하게 높지는 않지만 그만큼 안전자산에 투자하는 펀드임을 강조한 결과 법인들의 뭉칫돈과 자산가들의 억대 자금을 빨아들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으로 인한 피해자는 1100명, 피해 규모는 5000억원대로 추산된다. 이 사건은 사고 관련 기관 네 곳이 책임 소지를 놓고 공방전을 벌이고 있어 시장이 주시하고 있다.

사건의 핵심에는 옵티머스자산운용(펀드설계)-NH투자증권(펀드판매)-하나은행(수탁은행)-한국예탁결제원(사무수탁사)이 각자의 역할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한국예탁결제원과 하나은행이 펀드 자금을 투자자들과 약속한 투자처에 투자하지 않았다는 점, 투자금이 엉뚱한 코스닥 기업의 무자본 인수·합병(M&A)에 쓰였다는 점,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이 오르내린다는 점에서 라임 사건과 패턴이 비슷하다. 금융당국은 라임보다 옵티머스가 보다 더 악랄하고 정교하다고 혀를 내두른다.

옵티머스의 경영진이 이 정부 측근이란 점에서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금융정책특보를 지낸 이혁진 전 대표가 세운 옵티머스에 관련된 투자 피해액은 5000억원대에 이른다. 옵티머스의 치밀함은 계속된다. 옵티머스는 자사 고문단에 전직 경제부총리, 검찰총장, 군인을 포섭한 데 이어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받기 위해 전파진흥원 750억원, 농어촌공사 30억원, 한국마사회·한국전력 10억원 등 공기업 법인고객도 미리 확보하는 등 치밀한 작전을 짰다. 이것을 믿고 대학(건국대·한남대), 진영 행안부 장관, 안랩, 넥센 같은 기업과 재벌 회장들까지 믿고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국내 상장사가 약 60곳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들 기업의 투자 경위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소위 ‘사기 펀드’에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회사 자금을 특별한 의심 없이 투자한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측면에서다. 투자 과정에서 거부할 수 없는 ‘유력자의 영향력’이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펀드 관계자들의 중심으로 사기 전모와 펀드 자금을 추적하고 있다.

김남희 EBN 금융증권부 증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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