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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잘못된 사모펀드 정책설계…6조원이 증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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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김태현 기자, 조준영 기자] [대규모 사모펀드 사고, 누구 책임인가]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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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옵티머스 펀드 NH투자증권 피해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앞에서 '사기판매'를 규탄하고 있다. 옵티머스펀드의 최대 판매사인 NH투자증권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환매가 중단된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모펀드 투자자들에 대한 유동성 공급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2020.7.23/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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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589억원. 금융감독원이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최근 3년간 사모펀드 환매 중단' 규모다.

라임자산운용(1조4651억원) 홍콩 젠투파트너스(1조805억원) 헤리티지펀드(4392억원) 옵티머스자산운용(5151억원) 등과 관련한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가 모두 최근 3년간 발생했다.

이기간 사모펀드 사태로 묶인 자금 규모는 국내 2위 통신사 KT의 시가총액(6조200억원)보다 크다. 가히 사상 최대 금융 사고라고 할 만하다. 코스피200 기업 하나보다 훨씬 큰 자금이 3년간 증발했다.

이번 사태의 근원은 2015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활성화를 명분으로 종전의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보다 쉽게 사모펀드 운용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보다 많은 이들이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사모펀드 운용사 설립에 필요한 자기자본은 종전 60억원에서 10억원으로 6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운용사 전문인력 요건도 대폭 완화됐다.

사모펀드가 소수 적격 투자자만 투자하는 상품이라는 이유로 투자자에 대한 정보제공 등 법적 의무사항도 모두 면제해줬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강남 아줌마들의 계 모임을 만들 돈만 있으면 아무나 사모펀드를 만들 수 있었던 셈"이었다.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최소 투자금 문턱도 종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확 낮아졌다. 당국은 투자자 저변을 넓혀 사모펀드 산업을 활성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이 '고액 자산가'의 정의(定義, Definiton)를 바꿔버렸다.

당시 규제개편으로 5억원이 아닌 1억원만 어떻게든 가져오면 '고액 자산가'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됐던 것이다.

상품 공급자 쪽 문턱과 함께 투자자 쪽 문턱을 함께 낮추다보니 시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소위 '꾼'들을 걸러낼 만한 장치는 '사모펀드'라는 이유로 아예 사라졌다.

규제 공백을 기화로 삼아 '꾼'들은 투자자들로부터 끌어모은 자금을 개인적으로 횡령하거나 당초 투자목적과 다른 데 불법적으로 빼돌려 운용하다 날려먹었다. 투자자들은 퇴직금, 노후자금을 잃었다.

업계에서는 당국이 애초부터 '사모펀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제도를 엉성하게 만든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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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운용사 대표는 "외국의 사모펀드가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은 전문성을 갖춘 소수의 투자자가 직접 운용사(GP, 무한책임사원)를 철저하게 감시할 수 있다는 전제 때문"이라며 "운용사에 대한 감시능력이 없는 개인들이 사모펀드 시장에 진입하도록 하면서 운용사에는 법적 의무를 대거 면제해버린 것이 사모펀드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개인들의 진입을 허용한 결과 은행·증권 등 판매사 채널을 통한 사모펀드 판매가 필수가 됐다"며 "이 과정에서 '사모의 공모화'가 일어났음에도 투자자들은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꾼'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돼 피해를 볼 수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또 "당국은 '사모펀드'라는 이유로 운용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의도적으로 도외시했다"며 "사모의 공모화로 인한 현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최소 당국이 미필적 고의로 이를 방치했다거나 너무나 무능했던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제 막 불거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 속에서 '꾼'들과 투자자 사이에 껴 있던 판매사들만 곤욕을 치르고 있다.

최근 금감원은 라임펀드 판매사들로 하여금 투자자금 100%를 배상할 것을 '권고'했다. 겉으로는 '권고'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명령'인 당시 금감원의 처분에 은행·증권사 등 판매사들은 굴복했다. 나아가 당국은 판매사 대표이사들에 대한 직무정지 수준의 중징계를 통보했다.

물론 일부 판매사들은 사모펀드 운용사 측 부실을 알고도 적극 판매하거나 펀드 판매 이전의 실사를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등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모펀드 사태의 모든 책임을 판매사에게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도 적잖다.

황국상 기자 gshwang@mt.co.kr, 김태현 기자 thkim124@mt.co.kr, 조준영 기자 ch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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