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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종말,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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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핵폭발 직후 피어오른 ‘죽음의 버섯구름’. 1971년 프랑스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무루로아 환초에서 벌인 핵실험 당시 촬영된 사진이다.pri.org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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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흑사병부터 핵전쟁 위기까지
인류 멸망에 가까웠던 상황 되짚어
‘박멸’ 천연두, 세균 샘플 유출 위험
현실 인지하고 생존의 길 찾아가야

541년. 이집트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출항하는 배에 병원균 하나가 올라탔다. 역사가들이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라 부르는 페스트균이었다. 더 오래전이었다면 이 병원균은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 채 소멸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인간이 만든 운송수단은 너무 빨랐다.

이집트를 떠난 역병은 순식간에 선원들의 몸을 점령한 뒤 멀리 그리고 널리 퍼졌다. 그중 한 곳이 콘스탄티노플(터키 이스탄불)이었다. 당시 세계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던 콘스탄티노플은 주민의 40%를 이 역병으로 잃었다. 이후 발현된 흑사병, 스페인 독감은 더 큰 피해를 인류에게 안겼다. 이런 종말적 상황은 먼 과거에도 있었다. 한때 지구의 주인이었던 공룡,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청동기 문명 등이 원인도 모르는 채 사라졌다.

‘하드코어 히스토리’는 청동기 시대의 붕괴부터 핵무기 시대의 위기까지 종말적 상황을 통해 인류 생존의 역사를 되짚는다.

인류 멸망 시나리오를 보면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는 게 있다. 핵전쟁과 바이러스다. 책에 따르면 인류는 지금까지 70년 이상 핵실험을 이어 왔다. 그 가운데 옛 소련이 1961년 투하한 열핵폭탄(수소폭탄) ‘차르 봄바’는 폭발력이 50메가톤에 달했다. 이는 다이너마이트 5000만t,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1만 3000~1만 8000t)의 4000배 가까운 위력이다. 이 폭탄이 발사되지 않으려면 인간이 ‘영원히’ 전쟁을 포기해야 한다. 저자는 묻는다. 그게 가능하냐고.
서울신문

오늘날을 두고 ‘장기간 평화’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강대국 간 전쟁이 70년 이상 일어나지 않고 있어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나폴레옹 전쟁, 30년 전쟁, 100년 전쟁 등 강대국 간의 대규모 전쟁이 인류 역사의 일반적인 특징이었다는 점에 비춰 보면 확실히 이례적이긴 하다. 국지적 분쟁은 있어도 초강대국 간의 충돌만은 용케 피해 온 셈이다. 문제는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다.

바이러스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다. 지금 전 세계인이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지만 그나마 이는 인위적인 감염병이 아니다. 인간은 이미 병원균을 무기화하고 있고, 실제 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헬 게이트’를 열 유력한 주자로는 천연두가 꼽힌다.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병원균 중 하나로, 20세기 80년 동안 3억명에서 5억명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천연두는 1978년 사망자를 끝으로 박멸된 상태다. 샘플은 각각 미국과 러시아가 보관하고 있다. 한데 이는 말 그대로 ‘공식적인’ 상황이다. 가장 최근인 2014년을 비롯해 여러 차례 샘플이 발견됐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저자의 소망처럼 “부디 테러리스트가 이 샘플을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인류가 종말의 위협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책의 부제는 ‘종말의 역사에서 생존의 답을 찾다’이지만 사실 뚜렷한 답은 없어 보인다. 책의 원제처럼 ‘종말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The End Is Always Near)는 현실을 인지하는 것만이 그나마 종의 절멸 위기에 대한 유일한 대비책이 아닐까 싶다. 아마 저자의 출간 목적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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