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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코로나19 앓는 극장가, 여성감독이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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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영화 '소리도 없이'를 연출한 홍의정 감독.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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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감독들이 지배하던 극장가가 코로나19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사이 여성 감독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일반 상업영화에서 저예산 영화, 독립영화 그리고 해외 영화까지 출중한 재능을 보여주는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가을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신예 홍예정 감독의 ‘소리도 없이’는 지난 15일 개봉해 엿새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코로나19 여파로 21일까지 누적 관객수 28만명에 그치는 수준이지만, 평단으로부터 "장르의 전형성을 깬 신선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리도 없이’는 범죄조직의 하청을 받아 시신을 유기하는 일을 하던 두 남자가 유괴된 아이를 떠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 명백한 선악 이분법에 권선징악을 가미한 일반 범죄 영화와 달리,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진 '일상적인 밥벌이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지난달 개봉한 ‘디바’는 여성 제작자, 여성 감독, 여성 촬영감독과 한데 만나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거기다 주연도 두 여성, 신민아 이유영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남성 캐릭터와의 로맨스 같은 것 하나 없이 오직 여성 캐릭터 간 이야기로만 극을 이끌어간다. 전국 10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엔 실패했다. 하지만 "남성 중심의 영화 산업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민아는 개봉 당시 “능력 있고 실력이 뛰어난 여성 스태프들이 영화 현장에 많다는 사실에 반갑고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신수원 감독의 ‘젊은이의 양지’는 28일 개봉한다. ‘명왕성’ ‘마돈나’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예리하게 고발해온 신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청년들을 극한의 경쟁사회에 내모는 어른들을 꼬집는다. 이탈리아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고, 체코 프라하국제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됐을 만큼 해외 평가도 좋다. 배우 김호정의 열연도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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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원 감독. 준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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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감독들의 도전은 다음달에도 이어진다. 내달 12일 개봉하는 김혜수 주연의 ‘내가 죽던 날’은 신예 박지완 감독이 연출했다.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사라진 소녀와 이를 추적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디바’나 ‘젊은이의 양지’처럼 여성 캐릭터가 극을 이끄는 작품이다. 김혜수는 “외형적인 면에만 치중됐던 여성 캐릭터가 좀 더 내면이 완성된 형태로 소개되는 작품이 많아진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개봉하는 ‘애비규환’도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여성 캐릭터가 극을 이끄는 영화다. 그룹 에프엑스 출신의 정수정(가수 활동명 크리스탈)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최하나 감독의 데뷔작이다. 대학 재학 중 아이를 갖게 된 주인공이 15년 전 연락이 끊긴 친아빠와 집을 나간 아기 아빠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우리집’을 만든 아토가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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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시아마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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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성 감독 영화들도 속속 개봉한다. 지난 15일 개봉한 앨리스 위코노 감독의 ‘프록시마 프로젝트’는 육아, 성차별 등의 어려움을 딛고 우주비행에 나서는 여성 우주인의 이야기를 그려낸 이색 스페이스 드라마. 22일 개봉하는 ‘태양의 소녀들’은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이슬람 테러집단 IS(이슬람국가)에 맞서 싸운 야지디족 여성들의 실화를 다뤘다. 배우 출신 에바 허슨 감독이 연출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단박에 스타감독이 된 셀린 시아마 감독의 2014년작 ‘걸후드’도 내달 12일 관객을 찾아간다. 이로써 시아마 감독은 1년만에 자신의 연출작 4편을 국내에 개봉시키는 저력을 과시하게 됐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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