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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이슈 미술의 세계

영롱한 물방울과 문자의 만남…김창열 갤러리현대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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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김창열, '회귀(Recurrence) NSI91001-91', 1991, 캔버스에 먹과 유채, 197×333.3cm [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가까이에서 보면 흐릿하지만, 뒤로 물러서면 마법처럼 캔버스에 물방울이 점점 또렷하게 드러난다.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한국 추상미술 거장 김창열(91) 화백의 작품에는 한결같이 물방울이 맺혀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 약 50년간 이어온 물방울 작업은 작가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결정체다.

김창열 작품 앞에서 물방울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물방울과 함께 그의 예술 세계의 거대한 맥을 이루는 소재가 있다. 바로 문자다. 김창열에게 문자는 이미지와 문자, 과정과 형식, 동양과 서양, 추상과 구상의 세계를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미적 토대다.

한자의 기본 획이나 천자문 등을 바탕으로 맺힌 물방울은 더 투명하게 빛나고, 문자는 물방울과 결합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23일 개막하는 김창열 개인전 '더 패스(The Path)'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문자에 초점을 맞춰 문자와 물방울이 만난 대표작 30여점을 소개한다.

19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김창열은 열여섯살에 월남했다. 1948년 검정고시로 서울대 미대에 입학하지만 6·25전쟁이 발발해 학업을 중단한다. 이후 작가는 1965년부터 4년간 뉴욕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1969년 프랑스로 건너가 정착한다.

그는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살롱전 '살롱 드 메'에서 처음 물방울 회화를 선보인다.

물방울과 문자를 처음 접목한 작품은 1975년작 'Le Figaro'로, 프랑스 신문인 르 피가로 1면 위에 수채 물감으로 물방울을 그렸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작품을 비롯해 한자의 획을 연상시키는 추상적 형상이 캔버스에 스민 듯 나타나는 1980년대 중반 '회귀' 연작, 천자문 일부가 물방울과 화면에 공존하며 긴장 관계를 이루는 1980년대 말부터 2010년대까지의 '회귀' 연작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물방울과 한자가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화면에 자리 잡은 작품부터 물방울이 문자 위로 자리를 옮긴 작품, 문자의 획을 해체하고 추상적으로 변주한 작품까지 다양한 기법이 등장한다.

프랑스어가 빼곡한 신문지 위에서도, 한쪽에 가지런히 배치된 천자문 옆 너른 공간에서도 물방울은 맑고 순수하게 빛난다.

천자문은 작가에게 어린 시절 향수를 느끼게 하는 문자이기도 하다.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조부에게 천자문을 배웠다는 김창열은 "어린 시절 맨 처음 배운 글자이기 때문에 내게 감회가 깊은 천자문은 물방울의 동반자로서 서로 받쳐주는 구실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평생 물방울과 문자를 다뤄온 작가가 우주와 자연, 인간 삶의 이치 등에 관한 동양적 세계관을 담은 천자문을 통해 세상의 진리를 추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전시 제목은 동양 철학의 핵심인 '도리(道理)'. 수행 같은 창작을 이어오며 진리를 추구한 작가의 삶과 태도를 은유한다. 다음 달 29일까지.

연합뉴스

김창열, '휘가로지(Le Figaro)', 1975, 뉴스에 수채물감, 53.5×42cm [갤러리현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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