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북한 암시장에서 화성-16 동체 재료 T-800 구하려 스파이전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T-800 탄소섬유, 대북수출금지 품목

북, ICBM과 SLBM 위해 수십t 구입

화성-16 동체 제작에 T-800 3t 필요

해외 항공업체 T-800 대량 폐기처분

땡처리된 T-800이 중국 암시장 유통

북한이 암시장에서 다량 구매한 듯

북한이 지난 10일 열병식에서 공개한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6에 필요한 T-800급 탄소섬유의 구입에 혈안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화성-16의 동체를 감싸는 핵심재료인 T-800은 전략물자로 분류돼 북한엔 수출금지 품목이다. 국제적으로 생산량도 매우 적다. 탄소섬유(carbon fiber)는 쇠보다 훨씬 가볍지만(1/5) 강도는 더 높다. 그런데도 북한은 화성-16 등 ICBM과 북극성-4ㅅ(또는 A) 등 SLBM(잠수함용 탄도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T-800을 다량으로 비공식 루트로 구한 것이다. 정보당국이 북한에 들어간 T-800의 유통과정을 찾아내 차단하면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생산은 크게 제한된다.

방산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화성-16 미사일 1발에 T-800 탄소섬유가 3t가량 필요하다고 한다. 지름이 2m가 넘는 북극성-4ㅅ에는 발당 1.5t 이상 들어간 것으로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이 시험 발사용으로 화성-16과 북극성-4ㅅ을 여러 발씩 제작했으면 10t이 넘는 T-800이 필요하다. 더구나 북한은 화성-16 이전에도 화성-12ㆍ14ㆍ15를 제작했고, 북극성도 여러 발 발사했다. 여기에도 T-800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화성-16과 북극성-4ㅅ을 추가 생산해 실전 배치하려면 수십t의 T-800이 더 필요하다. 또 북한이 액체연료식 탄도미사일을 고체연료로 바꾸면 미사일 동체의 연료통 고압에 견디는 탄소섬유로 만들어야 한다.

탄소섬유는 유기물을 섭씨 800도 이상 가열해 탄소(90% 이상)만 추출한 뒤 실로 뽑아낸 첨단섬유다. 탄소 함유량에 따라 T-300급(92.5%), T-700급(93%), T-800급(96% 이상), T-1000급 등으로 나뉜다. 가볍지만 단단한 탄소섬유는 레이싱카 차체, 전기차, 수소차 저장탱크, 골프채와 낚싯대, 항공기 주날개, 전투기, 스텔스 함정 등에 다양하게 쓰인다. 특히 극초음속으로 비행하는 ICBM의 동체는 탄소섬유로 만든다. 전기차와 수소차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면 탄소섬유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탄소섬유의 전 세계 생산 규모는 15만t이다. 일본 도래이 등이 8만t, 중국이 2만t, 미국과 유럽 등이다. 한국은 4000t정도다. 탄소섬유 가운데서도 첨단무기에 쓰이는 T-800은 희귀하다. 국내에선 생산이 어렵고 일본 등 일부 선진국에서만 생산된다. 중국도 2018년에야 100t 규모의 생산 설비를 갖췄지만, 불량률이 높아 중국 내 수요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T-800보다 강도가 2배인 T-1000은 생산도 어렵지만, 구할 수가 없다. 중국도 지난해 T-1000을 추출하는 핵심 기술을 확보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북한이 다량의 T-800을 어떻게 샀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T-800을 구입하기까지 엄청난 첩보전이 동원됐을 것으로 보인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북한은 중국 암시장을 통해 T-800을 확보했다고 추정된다. 수년 전 군 산하 연구소가 미사일을 개발하다 남은 T-800이 중국 해관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고 한다. 사용기한(2년)이 지나 폐기한 T-800이 중국 암시장으로 들어가다 중국 해관에 걸린 것이다. 탄소섬유를 감아놓은 실패에는 생산자와 수요자가 모두 기재돼 있다. 그런데 전략물자인 T-800이 제3자에게 전달되니 중국 해관이 잡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용기한이 지난 탄소섬유는 10분의 1 가격에 ‘땡처리’한다. 하지만 암시장에선 다시 100배 가격으로 치솟는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암시장에선 땡처리된 탄소섬유가 '횡재'인 셈이다.

북한이 다량 구입한 T-800급은 해외 항공업체 B사가 폐기처분한 물량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업체는 2010년대 초반 신형 여객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수백t의 T-800을 구입했다고 한다. 이 업체는 신형 여객기의 주날개를 T-800으로 만들어 연료비 20% 절약하려고 했다. 그러나 신형 여객기 개발이 수년간 지연되면서 사용기간이 지난 T-800 수백t을 폐기처분했다는 것이다. 이 T-800이 중국 암시장으로 흘러갔고, 북한이 구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탄소섬유업계의 판단이다. 북한으로선 사용기간이 지난 T-800의 성능이 약간 떨어지지만, 쓸만하다는 것이다. 이 사례 외에는 북한이 수십t의 T-800을 확보할 정도의 물량이 암시장에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

북한이 T-800 탄소섬유를 화성-16 미사일 동체에 감는 장비(와인딩 머신)를 어떻게 확보했는지도 의문이다. 탄소섬유는 0.01㎜로 워낙 가늘어 정교한 와인딩 머신으로 감아야 한다. T-800와 마찬가지로 와인딩 머신도 전략물자여서 북한에는 수출이 금지돼 있다. 방산 관계자는 “북한이 와인딩 머신의 핵심장치인 헤드는 훔치고, 덩치가 큰 몸체는 카피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에서도 탄소섬유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