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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조문수 “무대 위에 같은 부츠는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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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수 의상 슈퍼바이저, 뮤지컬 ‘킹키부츠’의 또 다른 주인공 부츠를 말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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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출연 배우들이 부츠를 신고 함께 춤추는 장면. 20여켤레의 부츠가 한꺼번에 무대에 등장하는데, 같은 디자인의 부츠가 하나도 없다. CJ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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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에 처음 선을 보인 뒤 지난 8월21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4번째 한국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킹키부츠>의 주요 무대는 오랜 전통을 가진 남성용 구두 공장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공장을 물려받은 찰리는 저가 수입구두의 공세 속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간신히 재고를 처분했지만 앞으로 계획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찰리는 우연히 만난 드랙퀸(여장남자) 롤라의 말에서 길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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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신어도 끄떡없는, 튼튼한 부츠를 만들자.”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찰리는 롤라를 디자이너로 영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패션쇼를 준비한다. 1980년대 팝스타로 유명했던 작곡가 신디 로퍼의 디스코 음악 속에서 사랑과 우정을 담은 이야기가 신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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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에서 출연을 기다리고 있는 <킹키부츠>의 부츠들. CJ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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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속 소재였던 ‘튼튼한 부츠’에 대한 갈망은 무대 밖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킹키부츠>에서 롤라를 비롯한 드랙퀸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모두 ‘건장한’ 남자들이다. 이들은 공연 내내 허벅지까지 가리는 굽 높은 부츠를 신고 쉴 새 없이 춤을 춘다. 당연히 ‘남자가 신어도 끄떡없는’ 부츠는 <킹키부츠>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품이다. 기존 여성용 부츠의 크기만 키워서는 웬만한 남자들의 체중을 견딜 수 없다. <킹키부츠>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한 부츠들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관리되기에 수개월간 무리 없이 공연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핵심 부품은 ‘철심’이다. 한국 공연의 의상 슈퍼바이저를 맡고 있는 조문수 디자이너(59)는 지난 16일 기자와 통화에서 “일반적으로 굽이 높지 않은 남성용 부츠에는 철심이 없는데, 공연용 부츠에는 여성용 부츠보다 더 큰 철심을 신발 바닥에 넣는다”며 “발꿈치와 앞꿈치를 뺀 가운데 부분에 한뼘 정도 크기가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킹키부츠>에는 이렇게 튼튼한 부츠가 공연마다 20켤레 이상 무대에 오른다.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부츠까지 포함하면 30켤레로 그 수는 늘어난다. 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제작된 부츠들이다. 2014년 한국 초연을 할 때는 발 길이는 물론 종아리, 발목, 허벅지 둘레, 발의 두께까지 총 6개 치수를 재서 배우들에게 꼭 맞는 부츠를 만들어 들여왔다. 원작 공연과 비교하면 부츠의 크기만 다를 뿐 색상이나 콘셉트는 똑같다.

한국에서만 4번째 공연을 치르면서 이제는 공연마다 미국에서 모든 부츠를 만들어 가져오지는 않는다. 한국 제작사가 보유하고 있는 50여켤레의 <킹키부츠> 무대용 부츠 중에서 캐스팅된 배우들에게 맞는 것을 찾아서 쓴다. 조 디자이너는 “인종이 다양한 미국 등과 비교하면 감사하게도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발 크기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며 “대체로 남자배우들은 신발사이즈 270~275 정도가 많고, 조금 차이가 나는 것은 깔창 등의 ‘보조장비’를 이용하면 무리 없이 맞출 수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워낙 격렬한 공연을 펼치다 보니 굽은 수시로 수리하거나 갈아줘야 한다. 의상팀 7명이 각각 배우 5~6명씩을 맡아 공연이 끝난 뒤 부츠 상태를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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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에 문제가 생기면 수리는 ‘한국의 장인들’에게 맡긴다. 조 디자이너는 한국에서만 30년 가까이 일을 해 서울 어느 지역에나 믿고 맡길 수 있는 ‘기술자 네트워크’가 있다. 조 디자이너는 “극장 위치에 따라 맡기는 기술자들이 달라진다”며 “이를테면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할 때는 주로 잠실에, 블루스퀘어에서 할 때는 주로 이태원에 계신 분들에게 일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신발을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들어도 배우들이 실수하면 부상이 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훈련이다. 배우들은 무대에 오르지 않을 때도 항상 부츠를 신고 연습한다. 조 디자이너는 “보통 한달에서 한달반 정도면 남성배우들도 부츠에 적응을 한다”며 “공식 연습 전에도 요청을 하는 배우에게는 미리 부츠부터 보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연을 온전히 즐기려면 관객들은 <킹키부츠>의 부츠들을 마지막까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조 디자이너는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모두 무대에 올랐을 때 보면 같은 디자인의 부츠가 하나도 없다”며 “의상에 맞춰 굽 하나마다 붙어있는 크리스털의 광택, 크기를 모두 달리했다”고 말했다. 공연은 11월1일까지.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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