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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코로나가 바꾼 세계' 석학인터뷰] "최고의 백신은 이타주의…마스크에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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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 인터뷰

20년 전부터 세계적 감염병 확산 경고

"자기애에 빠진 세계, 코로나19로 강화"

해법은 '합리적 이기주의'로서의 이타주의

타인 보호 위한 마스크, 결국 스스로를 보호



지구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터널’에 진입한 지 10개월째, 누적 확진자는 4000만명을 넘어섰고, 1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터널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충격파는 지구촌의 삶의 방식도 바꿔놓고 있습니다. 단절은 어느덧 일상이 됐고, 불확실성 속에 개인과 기업은 물론 국가도 장기 대응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제레미 리프킨ㆍ자크 아탈리ㆍ제이슨 솅커ㆍ그레이엄 앨리슨 등 세계적인 석학과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가 몰고 온 변화의 실체와 파장을 잪어보고, 대응 방안을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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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코로나19 시대 팽배한 이기주의에 맞설 해법으로 이타주의를 꼽는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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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인 1999년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77)는『21세기 사전』에서 지구촌에 대규모 전염병이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2018년에 펴낸 『미래대예측』에서는 팽배한 이기주의가 경제불황과 전염병 확산을 더 가속할 것이라는 경고도 내놨다.

그로부터 2년 뒤, 예측은 현실이 됐다. 일찌감치 위기를 감지하게 한 근거는 뭘까. 그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잉태된 원인을 '자기애(自己愛)에 빠진 세계'에서 찾는다. 해법도 결국 그 원인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최고의 합리적 이기주의는 이타주의"라고 역설한다. 남을 위하는 게 결국은 자신을 위하는 길이란 것을 깨닫고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창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한때 서구사회에서 배척받던 마스크가 대중화된 것처럼 말이다.

다음은 아탈리와의 일문일답.

Q : 코로나19 위기를 풀 해법으로 '이타주의'를 제시했다.

A. 타인을 보호하는 일이 곧 나를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는 타인을 배제하고 자신만 생각하는 ‘자기애’(自己愛)에 빠져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불러왔고, 전 세계적인 환경·기후 문제, 공공부채, 빈부 격차를 만들었다. 코로나19의 등장으로 이런 현상은 더 심화했다. 세계는 서로를 배척하고, 문을 닫아걸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상호의존적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위기 상황에서 ‘고립’은 최악의 상황으로 향하는 지름길이고, ‘이타주의’는 최선의 상황을 여는 기회다.

Q : 당장 이타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뭔가.

A. 대표적인 게 마스크다. 마스크 착용은 타인을 보호하는 일이자 나를 위한 행동이다. 반대로 타인이 마스크를 착용하면 나도 보호받는다. 결국 이타주의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행동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이를 ‘합리적 이기주의’라고 부른다.

또 하나는 ‘자기 자신 되기’(Devenir-Soi), 쉽게 말해 자아 성찰이다. 위기 상황에도 흔들림이 없어야 타인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스스로 확신을 갖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5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자기 자신 존중하기, 매 순간 최선 다하기, 조건 없이 타인 돕기, 자신감 갖기, 뚜렷한 계획과 목표 세우기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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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 실천을 위한 5가지 원칙.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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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이타주의가 개인을 넘어 국제사회 사회에도 실현될 수 있을까. 현실에서 각국은 백신을 먼저 확보하려 경쟁을 벌이고 있다.

A. 각국의 백신 확보전을 나쁘게 보지만은 않는다. 국민 보호를 위한 자원 확보는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염병 대유행은 백신을 먼저 확보한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19는 세계적 대유행이다. 자국민에게 백신을 투여한다 해도 전염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국제 사회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움직여야 한다.

Q : 공동의 목표란 무엇이어야 하나.

A. ‘세계 법치’(rule of law). 전 세계를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일관성 있는 공동의 규칙을 세워야 한다. 코로나19의 경우 ‘위생’에 관한 공통된 개념과 대응책을 마련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 전염병 대유행은 앞으로도 반복된다. 이를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국제기관이 필수적이다. 유행병을 감시하고, 백신과 의약품 연구개발을 강화할 합의된 기구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다.

Q : 문제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위드 코로나’(With Covid)까지 거론된다.

A.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각자가 자기애에 빠져 자신의 눈앞에 닥친 문제 해결에 급급했다. 이제 시선을 미래세대로 돌려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한 이타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이른바 ‘긍정적 사회’(Positive Society)다. 미래 세대를 위해 전염병·기후변화·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은 지속가능한 자원에 투자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Q : 미래세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미래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A. 삶·죽음과 직접 연관된 생활경제(the Economy of life) 분야가 중요해질 것이다. 생활경제 분야는 보건과 위생, 식품과 농업, 교육과 연구, 디지털 정보와 보안, 청정에너지, 예술 등을 일컫는다. 이 가운데 보건과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Q : 그 이유는?

A. 보건산업은 대유행 대비를 위해 필수적인 분야다. 의료기업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집중해야 하고, 전 세계는 위생에 대한 공통된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교육도 중요하다. 거짓 정보를 걸러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 앞으로 세상은 온라인과 가상공간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문제는 가짜정보와 개인정보침해다. 권력과 계층 사회에 늘 존재해온 문제지만, 신기술이 등장하며 더 복잡해졌다. 거짓말은 쉬워졌지만, 진실을 가려내는 일은 어려워졌다.

미래세대가 비판적 사고를 길러야 하는 이유다. 교육은 스스로 정보를 찾고, 거짓을 가려내고,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신기술은 교육에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방법이 있다.



Q : 코로나19 이후 예술 분야가 더 주목받을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A. 그동안 예술은 인류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전쟁·경제 위기·전염병 등 냉혹한 현실이 닥칠 때마다 예술은 발전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인한 생존의 위협 속에 예술은 불안을 잠재우고,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기애’가 있다.

Q : 앞서 ‘자기애’는 이기주의를 만든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는데.

A. 맞다. 정치·경제·사회에서 자기애는 이기적 생태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예술 분야에서는 다르다.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스스로에 집중하며 자신만의 ‘예술성’을 드러냈다. 각자의 집에서 연주하고, 노래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동영상 공유 앱 ‘틱톡’(Tiktok)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예술 활동을 찍어 기록하고, 공유한다. 앞으로는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어디서든 무대를 펼칠 수 있다는 얘기다.

Q :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전략을 평가한다면.

A. 한국의 대응 전략은 과거 메르스 사태의 실패 경험을 발판으로 했다. 이타주의를 발휘해 마스크 착용에 적극적으로 동참했고, 신기술을 감염경로 추적에 적절히 사용했다. 한국의 대응방식이 세계의 신뢰를 얻은 이유다. 반면 미국은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팽배한 개인주의를 드러냈다. 중국은 자국민을 거짓말로 속여 지위를 잃었다.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사회이론가. 정치·경제·문화·역사를 아우르는 지식과 통찰력으로 사회 변화와 미래를 예리하게 전망하는 미래학자로 통한다. 비영리기관인 플래닛 파이낸스(PlaNet Finance)를 창립하고, 현재는 국제적 컨설팅 회사인 아탈리 &아소시에(Attali&Associates)의 회장을 맡고 있다. 『21세기 사전』,『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미래대예측』등 50권이 넘는 저서를 출간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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