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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설왕설래] 자판기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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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자동판매기의 역사는 22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자판기는 기원전 215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신전에 설치된 ‘성수(聖水) 자판기’다. 고대 그리스 과학자 헤론이 쓴 ‘공기역학’에 소개됐지만, 누가 발명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위쪽의 구멍에 동전을 넣으면 지렛대의 원리로 아래쪽 구멍의 뚜껑이 열려 물이 흘러나오는 방식이었다. 현대식 동전투입 자판기가 처음 등장한 곳은 영국이다. 요크셔 웨이크필드의 시메온 덴함은 1857년 1페니 동전을 넣으면 우표가 나오는 자판기를 발명해 특허를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판기는 1973년 산아제한 정책으로 도입된 피임기구 자판기였다. 이후 1977년 롯데산업이 일본 샤프의 커피 자판기 400여대를 수입해 설치했다. 국내 자판기 산업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됐으나 커피숍·편의점의 확산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3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고 2010년 이후로는 크게 위축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자판기가 부활하고 있다. 자판기는 비접촉·비대면 시대에 최적화된 유통창구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최근 새로 등장한 자판기는 사물인터넷(loT)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한 진화형이다. 국내에는 정육 자판기,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속속 등장했다. 정육 자판기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이 30%나 늘었고, 기기 설치 문의도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주류 자판기도 곧 등장할 전망이다. 소비자가 성인 인증을 하고 물건을 꺼내면 인공지능(AI)이 자동결제하는 방식이다.

‘자판기 천국’ 일본에서는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손을 대지 않고 발로 조작하는 자판기가 선보였다. 전자화폐 및 비접촉식 결제기능을 도입한 자판기도 등장했다. 기계 오류와 골목상권 침탈 문제 등은 풀어야 할 과제지만, 자판기 시장은 당분간 다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켓은 스마트 자판기의 글로벌 시장 규모가 오는 2027년 17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비대면 시대에 울상인 기업들이 자판기를 통해서라도 활로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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