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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임상균 칼럼] 부자가 되려는 욕망을 꺾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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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2011년 도쿄 특파원에 부임했을 당시 일본 경제는 20년간 장기 디플레에 빠져 있었다. 여느 나라처럼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도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리고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었다. 교과서대로라면 일본 경제는 되살아났어야 했지만 지금도 젖은 낙엽마냥 축 늘어져 있다.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 무기력한 일본 경제. 현지에서 만난 다양한 인사들에게 의견을 구해봤다. 그중 도쿄대 유명한 원로교수의 진단은 간단하고 명쾌했다.

“제로금리가 욕심 없는 사회를 만들었어요.”

금리가 제로에 가깝게 떨어지자 기업 경영자들은 3~4%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거둬도 만족해했다. 개인투자자들 역시 주식을 사서 5%만 수익이 나도 대박이라며 좋아했다고 한다. 성장에 대한 욕심이나 기대가 없으니 돈을 끌어와 투자를 할 생각은 애초에 접어버렸다.

2010년대 초 일본 사회는 설문조사 결과 하나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한국과 일본 대학생의 유학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한국 학생은 82.2%가 해외유학을 원했지만 일본 학생은 46.1%에 불과했다. 충격적인 내용은 유학을 원하지 않는 이유였다.

유학을 원치 않는 일본 대학생에게 이유를 복수로 받아 보니 ‘우리나라가 살기 편해서(53.2%)’ ‘언어가 안 돼서(48.1%)’ ‘외국서 혼자 생활할 자신이 없어서(42.7%)’ 순이었다. 심지어 ‘귀찮아서’라는 답변도 38.5%에 달했다. 대다수가 두렵거나 귀찮아서 유학을 포기한 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유학을 원치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문제였다. 일본 언론들은 겁 많고 욕망을 잃은 젊은이들한테 어떻게 미래를 맡기냐며 한탄을 쏟아냈다.

한국 경제도 일본을 닮아간다는 걱정이 많다. 제로에 가까운 금리, 저성장·저물가, 고령화와 노동인구 감소 등 각종 지표들이 10~20년 시차를 두고 일본을 쫓아간다.

다행히 요즘 한 가지 큰 차이점이 발견된다. 우리 젊은이들이 아직은 부자와 성공을 향한 욕망을 잃지 않았다. 부동산과 주식에서 ‘영끌 빚투(영혼까지 끌어 모아 빚을 내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은행에서 마이너스 대출을 받은 차주의 40%가 20~30대라고 한다. 어떻게든 집 한 채를 마련하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다. 너무 높아진 가격과 대출 규제로 부동산을 포기한 젊은 층은 주식에서라도 대박을 내보겠다고 덤벼든다. “오죽하면 이러겠냐”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야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반길 일이다. 되레 문재인정부가 이런 든든한 자원들의 기를 꺾고 있어 걱정이다. 교육, 취업 등에서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다. SKY(서울·고려·연세) 대학 신입생의 절반 이상이 월소득 949만원이 넘는 고소득층 자녀라고 한다. 박근혜정부 5년간 이 비율이 평균 41.4%였는데 교육 사다리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운 문정부 들어 오히려 더 높아졌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젊은 취업 지망생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온갖 부동산 규제는 젊은 층의 주택 보유의 기회와 방법만 축소할 뿐이다.

얼마 전 청와대에 청원 하나가 올라왔다. 성공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해서 고시까지 합격했다는 청원인은 “이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는 사회가 됐다”고 한탄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권유’대로 붕어·개구리·가재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좌절하는 젊은이가 더 늘어나지 않아야 한다.

[주간국장 sky221@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80호 (2020.10.21~10.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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