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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특별기고] 일조권 분쟁, 시뮬레이션 기술로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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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고층 아파트나 주상복합 건축물이 늘어나면서 일조권(日照權·right of light)을 둘러싼 분쟁이 급증하는 추세다.

일조권은 햇볕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환경 가운데 주거와 관련된 중요한 생활 이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래서 건축법에 의한 건축물 높이제한 기준의 하나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대도시 토지이용 효율성 제고와 건설사 이윤 극대화라는 접점이 맞물려 초고층 건축 붐이 일기 시작했다. 기존 저층 주거용 건물을 고층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로 재건축·재개발되는 과정에서 해당 건물 북측에 있는 기존 단독이나 공동주택 일조 환경이 악화돼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지만 일조 이익 침해에 대한 법적 구제는 손해의 전보를 지향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일조 침해에 대한 손해 보상금액 또한 그다지 많지 않아 사실상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현행 법제에 기초한 일조방해 구제는 사후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사법적 구제가 적용되는 본래적 성격과 그 한계를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일조방해 규제는 공법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사후적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민사 책임의 판단 기준과 실천적 법리적으로 충돌하는 현상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

우선 현행법상 '일조 향유이익'이 환경정책기본법 등에서 법적 보호대상으로 언급하고는 있으나 아직 실정법적인 권리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일조 방해를 예방하기 위한 수단인 유지청구권은 방해제거청구권과 방해예방청구권을 들 수 있다. 방해예방청구권은 소유권 등을 방해할 염려가 있는 경우 그 같은 방해의 염려가 있는 행위를 하는 자를 상대로 예방과 손해배상의 담보를 청구하는 권리다. 만약 사전적 예방을 염두에 둔다면 유지청구권이 물권법적 지위로부터 도출된다고 할 수도 있고, 불법행위에 따르는 효과라 할 수도 있다.

일조 향유이익이 침해될 염려가 있는 경우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건축허가 신청 때 동지(冬至) 시점을 기준으로 한 일조침해 여부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건축주로 하여금 제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건축물이 완성된 후 발생할 수도 있을 일조침해로 인한 피해와 법적 분쟁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 미리 완공 후 주변 건물의 일조량 감소분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시뮬레이션 기법을 통해 과학적으로 충분히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축 건축물이 완공될 경우 주위 건물에 초래하게 될 시간대별 일조변동 변화현상을 미리 계측해 건축허가 신청 때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 일조와 관련된 건축행정과 소유물 방해 예방법으로 과학적 계측 결과를 활용할 수 있도록 건축법령 개정 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공법적으로는 민사 판례를 통해 발전돼온 일조 향유이익 침해 여부의 판단기준인 수인한도 개념이 건축허가에 관한 관련 법규에 적절히 반영되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법원에 의한 최종적 사법 판단이 권리 구제에 대한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공법적 건축규제 법규에 반영하는 것은 일조 분쟁 예방을 위한 지름길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지난 2012년 동아대 법학박사 학위논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 바 있다. 일조 분쟁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방안으로 토지의 용도에 따른 일조기준을 정하고, 건축허가 신청자에게 공학적 가상실험 결과인 시뮬레이션을 건축허가 신청 때 미리 제출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일조 확보를 위한 기준을 대통령령에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는데 따른 입법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현행 건축법시행령 규정을 건축법에서 규정하도록 개정안을 제안했다. 하루가 다르게 발달해 가고 있는 과학적 시뮬레이션 기술 등을 바탕으로 급증하고 있는 일조 분쟁을 예방해 나가는 지름길을 찾아 주민 피해와 행정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박진수 BS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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