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5 (일)

[황영미의영화산책] 가족사랑으로 이기는 코로나블루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세계일보

높고 맑은 하늘과 함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코로나19로 우울한 나날을 보낸 사람이 많았다. 코로나블루로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영화 ‘남매의 여름밤’(감독 김단비)이 위로와 잔잔한 추억을 전해주면서 2만 관객을 넘겼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이 됐고,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밝은미래상과 뉴욕 아시안영화제에서 최우수 장편영화상까지 받았다. 그렇다고 대단한 작품성을 지닌 영화로는 보이지 않는 독립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주제가인 신중현 작사·작곡, 장현이 부른 ‘미련’이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고 맴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반지하에 살던 옥주(최정운)와 남동생 동주(박승준)는 아빠(양흥주)와 함께 여름방학 동안 우선 할아버지(김상동) 집에서 살기 위해 아빠가 장사하는 작은 승합차에 짐을 싣고 떠난다. 그때부터 ‘내 마음이 가는 그곳에,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 갈 수 없는 먼 곳이기에 그리움만 더하는 사람, 코스모스 길을 따라서…’의 7080 가요가 깔리면서 회한 어린 분위기가 영화를 감싼다.

1990년대생 감독과는 어울리지 않는 올드한 감성이 묻어나는 화면과 공간, 낡은 재봉틀 같은 소도구가 영화를 가득 채운다. 70년대에 지은 이층 양옥집, 손때 가득 묻은 목조로 된 내부 인테리어, 잡초와 함께 더불어 자란 마당의 나무에 호스로 물을 뿌리는 치매 걸린 할아버지의 모습 등이 영화적 상상력이 발현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늘 봐왔던, 추억 돋는 물건들이 주는 편안함을 전해준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이처럼 구체적이면서 리얼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 있다. 가족들이 식탁에서 함께 먹는 음식 메뉴도 잡채, 비빔국수 등 정겹기 짝이 없다.

할아버지를 통해 인생의 생로병사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이처럼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거늘 무엇을 더 탐할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에 더하여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사랑은 가슴 뭉클하다. 중학생 옥주는 사춘기의 예민함을 보여주고, 귀엽기만 한 초등학생 동주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미소짓게 만든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가족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됐을까. 코로나 19로 추석에도 만나지 못한 가족친지들께 다정한 전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