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기획전 '시대의 빛과 바람'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서 16일 개막
제주시절 회화 작품 40여 점 공개
황톳빛 바탕과 먹선, 고유 화법
변시지, 태풍, 1982, Oil on canvas, 182x228cm. 기당미술관. [사진 가나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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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자그마한 돌섬으로 폭풍이 몰아친다. 파도는 섬을 때리며 하얗게 부서지고, 작은 초가집을 둘러싼 소나무는 하나같이 바람 부는 방향으로 몸이 한껏 휘었다. 그 바람 속에 서 있는 사람 하나, 그리고 조랑말 한 마리. 변시지(邊時志·1926~2013) 작가가 1982년에 그린 '태풍' 작품 속 풍경이다. 캔버스에 바람을 담으려 했던 작가는 7년 전 저세상으로 떠났는데, 그의 작품으로 가득 찬 전시장엔 여전히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최근 미술계에서 '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지난 5월 변시지의 전 생애 작품을 다룬 화집『바람의 길, 변시지』(누보)이 출간된 데 이어 이번엔 그의 주요 작품을 선보이는 기획전이 서울에서 열린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16일 개막하는 변시지 특별 회고전 '변시지, 시대의 빛과 바람'이다. 작가가 50세 되던 해인 1975년 제주로 귀향해 201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8년간 제주에 머물던 시절 완성된 주요 작품 4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동안 국내 화단과 미술 시장에서 변시지 작가의 위상은 독특했다. 작가 생전부터 한 편엔 열렬한 소수 컬렉터가 있었던 반면, 대중들에게는 그 이름이 낯설게 여겨질 정도로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았다. 변시지는 평생 그림을 그려 상당수의 작품을 남겼지만, 작가 자신도 "작품은 1년에 1~2점만 팔아도 된다"고 했을 정도로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아 미술 시장에서 활발하게 유통되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오랫동안 중앙 화단에서 비켜나 있던 변시지 작가를 서울 메이저 갤러리에서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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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는 어떤 작가
생전 작업실의 변시지 작가. 2013년에 별세했다. [사진 가나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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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는 1926년 제주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인 1931년 가족과 함께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1933년 소학교 2학년 때 교내 씨름대회에서 상급생과 겨루다가 다리를 다치며 평생 안고 갈 장애를 얻게 된다. 그의 그림 속에 지팡이를 든 사람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연유다. 1945년 오사카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도쿄로 옮겨간 그는 당대 일본 화단의 거장이자 도쿄대 교수였던 데라우치 만지로(1890~1964) 문하생으로 서양 근대미술 기법을 배우며 인물화와 풍경화를 집중적으로 그렸다.
변시지는 1948년 당시 일본 최고의 중앙화단으로 알려진 광풍회 공모전에서 최연소로 최고상을 받고 24세에는 광풍회 심사위원이 됐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일본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작업하던 그는 1957년 서울대 교수로 초빙돼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 사회와 화단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1년도 채 안 돼 서울대를 떠났고, 마포고 교사, 중앙대·한양대 등의 강사로 전전하다 나이 오십이 되던 해 자신의 고향인 제주로 돌아가 은둔자처럼 살며 그림만 그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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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제주 풍경화가 아니다
제주 초기시절의 작품. 변시지, 해촌, 1977, Oil on canvas, 24x66cm.[사진 가나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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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 해촌,2002, 41x53cm. [사진 가나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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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지의 화풍은 크게 일본시절(1931~1957), 서울시절(1957~1975), 제주시절(197~2013)로 나뉜다. 이번 전시는 서양화와 동양의 문인화 기법을 융합한 변시지만의 독창적 화풍이 완성된 제주 시절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마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듯 기존 화풍을 다 버리고 제주의 향토성을 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그린 작품들이다.
제주도 초기 시절 그림이 황톳빛과 먹선을 이용해 '제주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1990년대 이후의 그림 속엔 휘몰아치는 바람이 더욱 두드러진다. 1991년 집중적으로 그린 '블랙시리즈'와 거센 폭풍 한가운데서 날갯짓하는 까마귀들을 그린 '생존 시리즈'도 여기서 볼 수 있다. 반면 후반의 그림에선 작가 특유의 황톳빛과 선이 더욱 밝고 온화해졌다.
작가는 생전에 "단순히 보여지는 풍경화가 아니라, 그들 삶의 맥락과 맞닿아 있는 제주 풍경을, 그들의 독특한 정서를 형상화한 작품을 창작하고 싶었다"며 "현대문명에 밀려 사라져가는 제주의 원형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고 말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찾은 것이 황토빛 노란색과 마치 먹을 쓰듯이 검은 선으로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특히 황토색은 "현란한 색으로 아무리 제주를 표현해도 어색했다"는 작가가 40년 넘게 익숙하던 모든 색과 기법을 버리고 찾은 제주의 색과 빛이었다.
그림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도 눈길을 끈다. 소년과 지팡이를 짚고 걷는 사람, 조랑말, 까마귀와 해, 돛단배, 초가, 소나무 등이다. 한결같이 바람 부는 섬에 쓸쓸하게 존재하는 것들이다. 특히 격랑 한가운데 한 점처럼 그려진 돛단배 한 척은 마치 작가의 인장처럼 거의 모든 작품 속에 등장한다. 거친 물살에 위태롭게 흔들리지만 침몰하지 않고 꿋꿋하게 어디론가 향해가는 모습이다.
서양화가 안진희는 ‘변시지의 회화세계’라는 박사논문에서“서양의 기법에서 시작해 오랜 실험과 탐색을 거친 후, 동양의 정신과 기법을 수용한 결과물들"이라며 "그의 그림은 단순히 풍경화가 아니라, 동양의 문인화 정신을 반영한 한 편의 시”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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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그에게 무엇이었나
변시지, 산방산, 1990, 130x97cm. [사진 가나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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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변시지의 모든 작품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는 것은 바람 그 자체다. 바람을 맞으며 온몸을 구부린 채 서 있는 사람, 지붕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소박한 초가, 흐린 수평선, 멀리 떠나간 돛단배는 마치 운명에 맞선 개인을 넘어서 역사의 수난을 딛고 살아가는 인류를 상징하듯이 화난 듯 일렁이는 바다와 하나로 그려져 있다.
미술평론가들은 '변시지의 제주 그림이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라고 본다. 이건용 평론가는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실존을 애잔하고 비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했고, 오광수 평론가는 "변시지의 작품은 그 개인에 의해 창조된 세계라기보다는 차라리 제주도라는 풍토가 창조해낸 세계"라며 "그만큼 순수하고 자생적이다"라고 했다.
『변시지, 폭풍의 화가』를 쓴 서종택 고려대 명예교수는 "작가는 일찍이 서구의 정통회화를 공부했지만 그가 제주에서 보낸 40년 가까운 시간은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도정이었다"며 "그의 화폭엔 풍물로서의 제주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소슬함, 자연에 대한 외경이 황톳빛으로 상징, 승화돼 있다"고 말했다.
가나아트와 함께 이번 전시를 준비한 변정훈 아트시지재단 대표는 "아버지는 평생 '예술은 완성이 없다'고 하셨다. 이번 전시를 빌어 더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작품세계를 일군 화가 변시지를 만나기를 바란다"면서 " 2026년이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앞으로 제주에 변시지 미술관을 건립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11월 15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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