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대응 지적에 입장 재확인
2015년 12월 일본군위안부합의
제3국 기림비 설립 비지원 담겨
합의 사실상 파기됐지만 부담 작용
지난달 25일 베를린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의 비문을 보는 시민과 소녀상 옆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시민. 베를린=연합뉴스 |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철거 압박에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나서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2015년 12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은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대응에 비해 우리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에 “민간 차원의 자발적 움직임에 한국과 일본 정부가 외교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우리 정부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2015년 위안부 합의와 관련돼 있다는 분석이다.
2017년 12월 외교부 직속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는 2015년 합의에서 당시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이전하고, 제3국 기림비 설립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등 일본과 ‘이면합의’를 했다고 발표했다. 소녀상과 기림비는 다르지만, 큰 틀에서 같은 범주에 속한다.
TF 발표 뒤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이 합의는 사실상 파기됐다. 하지만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공식 파기를 선언하지 않았고 재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국내적으로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라 파기를 선언하더라도 국가 간 합의를 파기하는 데는 외교적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베를린 소녀상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적극 거론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게다가 위안부 합의는 부각되는 것 자체가 양국 갈등을 재점화할 수 있는 인화성이 큰 소재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나친 외교쟁점화를 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독일 정부와 교섭하며 한국 정부와의 합의를 근거로 제시했을 개연성이 높다.
강제동원 기업 자산 현금화 문제로 일본과 일전을 앞둔 상황에서 전선을 확대하는 것도 정부로선 부담스러운 일이다.
일본 교도통신은 이날 우리 정부가 현금화를 중단하지 않으면 일본 정부가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는데, 외교부 당국자는 “관련국과 협의 중”이라고만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소속 국회의원 113명은 베를린 소녀상 철거 명령에 항의하는 서한을 이날 주한 독일대사관에 전달했다.
일본 시민단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도 이날 도쿄 총리관저 앞에서 집회를 갖고 베를린 소녀상 철거 요청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하는 항의문에 1900여명의 서명을 받아 내각부에 제출했다.
홍주형 기자, 도쿄=김청중 특파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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