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말모이 원고'·'조선말 큰사전 원고' 보물 지정 예고
"식민지배 상황에서 독립 준비한 뚜렷한 증거물"
"국어 정립이 우리 민족 힘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실체"
말모이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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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우리말을 지킨 국민적 노력의 결실 두 건이 보물로 승격된다. ‘말모이 원고(국가등록문화재 제523호)’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국가등록문화재 제524-1호·524-2호)’다. 문화재청은 8일 문화재위원회 동산문화재분과 회의에서 두 자료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한 달간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말모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사전이다. 학술·고전 간행단체 조선광문회가 주관하고, 주시경·김두봉·이규영·권덕규 등이 집필했다. 제목인 ‘말모이’는 말을 모아 만든 것, 즉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한글로 민족의 얼을 살리고 주권을 회복하고자 편찬했다. 원고 집필은 1911년부터 1914년까지 이뤄졌다. 여러 권으로 구성됐다고 추정되나 ‘ㄱ’부터 ‘걀죽’까지 올림말(표제어)이 수록된 한 권만 전해진다.
말모이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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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자 원고지에는 단정한 붓글씨체가 새겨졌다. 구성은 크게 ‘알기’, ‘본문’, ‘찾기’, ‘자획 찾기’ 네 부분으로 나뉜다. ‘알기’는 범례에 해당하는 여섯 사항을 표시하고 괄호 안에 품사를 제시했다. 뜻풀이는 한글과 국한문을 혼용해 서술했다. ‘찾기’는 색인 본문의 올림말을 한글 자모순으로 배열했다. ‘자획 찾기’는 본문에 수록된 한자 획수에 따라 낱말을 찾을 수 있게 했다. 아울러 한자어와 외래어를 구분하기 위해 각각 앞에 ‘+’와 ‘×’을 붙였다.
가장 큰 특징은 특별 제작된 원고지 형태의 판식(板式·책을 쓰거나 인쇄한 면의 테두리 또는 짜임새)이다. 체계적인 설명이 한눈에 보일 수 있게 했다. 고서(古書)의 판심제(版心題·판심에 표시된 책의 이름)를 본 따 그 안에 ‘말모이’라는 서명을 새기고, 원고지 아래위에 걸쳐 해당 면에 수록된 다양한 정보를 안내했다. 첫 단어, 마지막 단어, 모음, 자음, 받침, 한문, 외래어 표기 등이다.
문화재청 측은 “현존하는 근대국어사 자료 가운데 유일하게 사전 출판하려고 만들어진 최종 원고”라며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사전편찬 역량을 보여준다”고 했다. “우리말을 지키려 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역사·학술적 의미가 크다”고 평했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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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한글학회 전신인 조선어학회에서 1929년부터 1942년까지 작성한 사전 원고의 필사본 교정지 열네 권이다. 한글학회(8권)와 독립기념관(5권), 개인(1권)이 나눠 소장한다. 개인 소장본은 ‘범례’와 ‘ㄱ’ 부분에 해당하는 미공개 자료. 1950년대에 ‘큰사전’ 편찬원으로 참여한 고(故) 김민수 고려대 교수의 유족이 보관한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최종 정리된 원고라서 깨끗한 ‘말모이 원고’와 달리 집필·수정·교열한 학자 다수의 손때가 묻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됐으나 1945년 9월 8일 경성역(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그 덕에 1957년 ‘큰 사전’ 여섯 권이 완성됐다.
조선어학회 한글사전 편찬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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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철자법, 맞춤법, 표준어 등 우리말 통일사업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전 국민의 우리말 사랑과 민족독립의 염원도 담겼다. 사전편찬 사업에 사회운동가, 종교인, 교육자, 어문학자, 출판인, 자본가 등 108명이 참여했다. 영친왕이 후원금 1000원(현 기준 약 958만원)을 기부하고, 각지 민초들이 지역별 사투리와 우리말 자료를 모아 학회로 보내오는 등 계층·신분을 뛰어넘는 범국민적 움직임으로 발전했다.
문화재청 측은 “식민지배 상황에서 독립을 준비한 뚜렷한 증거물이자 언어생활의 변천을 알려주는 생생한 자료”라며 “국어의 정립이 우리 민족의 힘으로 체계적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실체”라고 했다. “한국문화사와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대표성과 상징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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