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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 plus] `디지털 위안화` 거래 벌써 2000억…中, 달러패권에 맞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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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범운영중인 中 디지털화폐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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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지난 7년 동안 공들여 개발한 법정 디지털화폐(디지털 위안화)가 도입 초읽기에 들어갔다. 최근 판이페이 인민은행 부행장은 "디지털 위안화 시범 운영을 통해 이미 313만건의 거래가 일어났고, 거래 규모는 11억위안에 달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디지털화폐 발행을 위해 수년에 걸쳐 치밀한 행보를 걷고 있다. 인민은행은 2013년 '디지털화폐 연구에 관한 의견'을 국무원에 상정하고, 2014년부터 은행 내 연구팀을 꾸려 화폐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2017년 5월 디지털화폐연구소를 만들어 첨단기술 기업과 이동통신사 등과 함께 디지털화폐 유통 및 결제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2018년 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화의 공식 명칭을 '디지털 화폐·전자결제(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로 정했다. 지난해 말 디지털 위안화 설계 작업을 마무리하고 올해 4월부터 선전 쑤저우 청두 슝안신구 등 주요 도시에서 시범 유통에 돌입한 뒤 실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단계다.

디지털 위안화는 비트코인, 리브라 등 가상화폐와는 개념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법정 디지털화폐라는 것이다. '디지털 현금' 성격을 띤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인민은행은 개인 기업 등 경제주체에게 곧바로 디지털화폐를 공급하지 않고, 시중은행을 통해 디지털화폐를 공급하는 이원화 방식을 따른다. 개인이나 기업이 시중은행에 디지털화폐로 교환하고 싶은 만큼 위안화를 지불하면 시중은행이 각 경제주체의 스마트폰 전자지갑 플랫폼에 1대1 교환비율로 디지털화폐를 충전해준다. 현재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알리페이나 위챗페이의 현금 충전 방식과 유사하다. 다만 충전을 실제 화폐가 아닌 '디지털화폐'로 하는 것이 특징인 셈이다.

인민은행이 이 같은 유통 방식을 차용하려는 것은 디지털화폐를 현금 통화를 의미하는 본원통화(M0)의 일부로 대체하겠다는 뜻이다. 은행계좌나 네트워크 없이 오프라인 결제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는 점과 익명성이 보장되지만 자금세탁과 같은 범죄혐의가 의심되는 경우 당국이 자금추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현재 중국은 '단계별' 디지털 위안화 발행을 추진 중이다. 기술 안정성과 상호 운용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중국 본토에서 디지털화폐 유통을 점진적으로 확대 시행한 뒤 홍콩에 이어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연선국가 등으로 유통 범위를 넓혀나가는 전략이다.

올해 들어 중국이 디지털화폐 발행 프로젝트를 더욱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대내외 정세와 관련이 있다. 대내적으로 중국의 디지털 경제 규모는 지난해 35조8000억위안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6.2%를 기록했고, 알리페이와 같은 모바일 금융결제가 일상 속으로 온전히 자리 잡은 만큼 디지털화폐 발행을 위한 인프라 환경이 무르익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중신증권은 디지털 위안화가 발행되면 3년 내 전국 유통화폐의 30~50%가 디지털화폐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했다.

대외적으로는 고조되고 있는 미·중 갈등 양상이 디지털화폐 도입 속도를 높이게 한 변수였다. 달러가 무역, 투자 등 글로벌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미·중 충돌 격화는 중국에 큰 부담 요인이다. 특히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 제정을 강행하자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박탈하고 향후 추가 규제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중 하나가 홍콩 은행들이 조달할 수 있는 달러 규모를 제한하는 것인데 이는 홍콩달러와 위안화 변동성을 키워 경제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의 노림수는 중장기적으로 홍콩에서도 디지털화폐 도입 및 확산을 통해 역내에서 달러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데 있다.

중국 지도부는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 일대일로와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 중인데 디지털 위안화는 두 액션플랜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중국이 세계 최초로 디지털화폐를 발행하게 되면 디지털 위안화가 '국제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위안화의 위상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또 중국이 일대일로 관련 국가들과의 무역거래에서 결제 수단으로 디지털 위안화의 사용을 적극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디지털 위안화는 아프리카 등 달러 부채 부담을 안고 있는 일대일로 관련 국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중국은 2009년 7월부터 '위안화 국제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달러 결제 시스템을 약화시킬 수 있는 대항 조치들을 하나둘씩 선보였다. 중국은 세계 200여 개국 은행이 이용 중인 달러 송금 체제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IFT)'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2015년 위안화로 거래하는 '국제은행 간 지급 시스템(CIPS)'을 구축했다. 디지털 위안화가 나오게 되면 시간·비용 및 안전성 측면에서 국제 송금 편의성이 높아져 CIPS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국제 원유시장에서 '페트로 위안화' 시대도 열었다. 중국은 지난 7월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으로부터 이라크산 원유 300만배럴을 수입하면서 '위안화'로 결제했다. 원유를 달러로만 거래하는 불문율을 깬 첫 사례다. 일각에선 디지털 위안화가 도입·확산되면 국제 원유시장에서 달러의 독보적인 지배력이 점차 약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도입 준비 단계인 디지털 위안화의 발행 이후 파급효과를 예단하긴 쉽지 않다. 디지털 위안화가 '위안화 국제화'를 촉진해 달러가 지배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질서를 바꿀 것이란 시각과 위안화가 '디지털'의 날개를 달더라도 달러의 패권 지위를 위협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공존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향후 달러 패권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잠재적 위험 변수로 지목했다. 반면 디지털 위안화에 대한 과대평가를 지양하는 시각에는 중국 금융시장의 폐쇄성 등을 이유로 디지털 위안화의 역외 확산이 제한될 것이란 논리가 깔려 있다.

[베이징 = 김대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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