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8 (금)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빛으로 밝혀낸 문화재의 생로병사, 중앙박물관 ‘빛의 과학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세계일보

‘금제 허리띠 고리’(국보 89호)는 주사전자현미경 관찰 등을 통해 0.3∼0.7㎜ 두께의 금판에 용 일곱 마리를 표현하고, 각각을 금선과 지름 0.3∼1.6㎜의 금알갱이로 장식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북 전주시 여의동에서 출토된 ‘거친무늬 거울’은 2200여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마치 영원을 살아온 듯 하고, ‘찬란한 문화유산’으로 그 세월만큼 살아갈 것을 기대하지만 여섯 조각으로 깨진 걸 붙여 놓은 자국, 청동의 부식물은 청동기 시대의 이 유물 또한 생로병사의 주기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중요한 건 문화재로서의 정체성을 오랫동안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방법이다. 보존과학의 지향점이 여기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는 문화재의 안팎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보존과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가시광선, 자외선, 적외선, 엑스선 등 빛을 활용해 유물의 제작 방식, 훼손의 양상과 정도 등 현재의 상태를 파악하는 건 문화재 유지, 관리의 시작이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78호)과 처음 공개되는 ‘경복궁 교태전 부벽화’ 등 67점에 대한 조사과정을 들여다보고, 흥미로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밀리미터 단위의 금속유물, 누금공예품의 탄생

1세기 경 낙랑의 유물로 추정되는 ‘금제 허리띠 고리’(〃89호)는 지금까지 출토된 것 중 가장 오래된 누금(금선, 금알갱이로 금제품의 표면을 장식하는 기법) 공예품이다. 엑스선 형광분석, 주사전자현미경 관찰 등을 통해 파악한 바로는 0.3∼0.7㎜ 두께의 금판에 일곱 마리의 용을 표현하고, 각각의 용을 금선과 지름 0.3∼1.6㎜의 금알갱이로 장식했다.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90호)는 삼국시대 귀걸이 중 최고의 명품으로 꼽힌다. 이 귀걸이 역시 금선, 금알갱이를 이용한 누금 기법으로 화려함을 더했다. 금알갱이의 크기는 약 0.7∼1.2㎜, 금선의 두께는 0.6∼0.8㎜로 확인됐다.

세계일보

‘금제 허리띠 고리’(국보 89호)를 주사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한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금이 화려한 장식품의 재료로 종종 활용된 건 늘어나고, 얇게 펴지는 성질이 금속 중에서 가장 우수하기 때문이다. 금선은 금덩어리에 열을 가한 뒤 두들겨서 만들고, 금알갱이는 금선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녹여서 만들었다.

금제 허리띠 고리나 부부총 금귀걸이 같은 누금 공예품의 제조에서 금선, 금알갱이를 표면에 접합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세 가지 방법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첫째, 은과 합금한 순도가 낮은 금으로 땜질을 하는 것이다. 둘째, 구리화합물을 부착 부위에 놓고 열을 가해 접합하는 방법이다. 셋째는 물질의 추가없이 온도를 높여 녹기 시작하는 순간에 붙이는 방식이다. 박물관은 “누금세공은 고도의 기술과 정교함을 바탕으로 한 공예 기법”이라며 “금선, 금알갱이의 제작과 부착방식을 일부 밝혀졌지만 당시에 사용한 도구, 가열의 방식 등 더 많은 부분이 궁금증으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일보

목조석가불좌상의 CT 촬영 결과 불상 내부가 종이, 직물로 보이는 복장물로 채워져 있음이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세월이 지운 비밀, 최초의 논어 목간

1205년 세상을 떠난 고려 중기의 문신 최루백의 무덤 속엔 살았을 적의 행적과 평가를 담은 글을 돌에 새긴 묘지명이 함께 묻혔다. 그러나 긴 세월이 지난 뒤 발굴되었을 때 묘지명에는 육안으로 판독할 수 있는 글자가 별로 없었다. “돌에 함유되어 있던 철 성분이 시간이 흐르면서 녹슬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발굴된 길이 20.6㎝의 통일신라 목간은 각 면에 글자를 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일부 글자가 보이긴 하지만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유물이 품은 생생한 정보가 긴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희미해지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인간의 노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런 현상은 변색, 표면의 부식과 박락, 재질의 약화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이에 따라 관련 정보는 비밀인 양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루백 묘지명의 판독에는 ‘반사율 변화 이미지 분석법’(RTI)이 활용됐다. RTI 분석법은 “가시광선과 카메라를 활용하여 문화재가 갖고 있는 표면정보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흔적도 수월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적외선 촬영 결과 봉황동 목간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저는 남이 제게 해롭게 하는 것을 원치 않듯이, 저 역시 남에게 해롭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논어 ‘공야장’의 일부다. 봉황동 목간은 최초의 논어 목간으로 유명하다.

세계일보

◆깨지고 떼운 흔적, 문화재를 진찰하다

병의 원인은 잘못된 관리, 불의의 사고, 노화 등 여러가지다. 피하는 게 상책이겠으나 일단 발병했다면 치료를 하거나 악화하는 걸 막아야 한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꼼꼼하게 들여다 보는 것이 시작이다.

‘청자 상감 국화무늬 병’의 몸통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파손된 것을 수리한 것으로 보이는 반원 모양의 흔적이 보인다. 박물관은 “균열이 있는 부분을 따라 처리했던 복원제가 열화되어 황변이 심하게 진행된 상태”라며 “자외선으로 보면 형광 물질이 포함된 복원제 때문에 복원 부위 주변을 따라 파란색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선 전기에 제작된 ‘목조석가불좌상’은 한눈에도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는다. 표면의 금박이 심하게 떨어져 나간 상태이고 뒷면은 훼손이 매우 심하다. 내부도 비슷한 상태다.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통해 “목재는 충해(蟲害)가 매우 심하고 등 부분은 표면까지 피해를 입어 금박만 남아 있거나 구멍이 뚫려 있을 정도”임을 확인했다. CT는 불상 내부가 지류와 직물로 보이는 물질로 가득차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박물관 유혜선 보존과학부장은 “CT는 내부 구조의 시각화를 통해 유물을 보다 직관적으로 조사, 분석하는 데 활용하는 기술”이라며 “불과 5, 6년 전만 해도 CT로 문화재를 조사한 사례가 극히 드물었으나 현재는 문화재를 진단하고 연구하는 데 가장 활용성이 큰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