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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NGO 발언대]기초생활보장제 20년, 경험자에 귀 기울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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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0월1일이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한 지 꼭 20년이 된다. 외환위기 이후 대량 실업과 노동시장 구조 개편에 따른 ‘신빈곤’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지난 20년간 인구 3%가량 수급자들의 버팀목이었지만 넓은 사각지대와 낮은 수급비로 숱한 비판을 받아오기도 했다.

경향신문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빈곤사회연대는 기초생활보장제도 20년 평가를 위해 수급자, 수급 탈락자, 사회복지노동자 등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평가와 소회를 모으는 중이다. 전문가와 고위공무원이 아니라 제도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이 제도를 평가하고 개선방안을 찾기 위함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한 청년 부양의무자는 최근 의사 파업을 보며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고 한다. 그가 느낀 힘은 의사 파업의 성패가 아니었다. 전 사회가 의사 파업을 논하는 것 그 자체였다. 수급자로 살았고 현재는 부모님의 부양의무자가 된 그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수급비 인상을 요구해 온 운동이 사회에서 얼마나 작게 취급되어 왔는지에 대해 회상했다. 돌이켜보니 침묵도 메시지라는 사실이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가장 작은 역할을 맡되 더 많은 목소리를 탐내지 않는 것이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가난의 미덕이었다.

지난 20년, 빈곤층을 다루는 양상도 문제였다. 예산 감축, 복지재정 효율화를 요구하는 관료들은 복지를 받는 시민을 사회의 부담, 예비 부정수급자로 취급하길 서슴지 않았다. 선한 빈민으로 포장되지 않는 빈곤층의 요구는 불경하게 치부했다. ‘수급비 모아 기부’한 빈곤층은 지원받을 만한 선한 빈민이지만 그렇지 않은 빈민에게는 더 엄격해야 한다는 꾸짖음은 가난한 이들의 복지권리를 동정과 시혜 위에 옹색하게 세우고 인권의 보편성과 상호성을 지워버렸다.

서울 서초구는 시가표준액 9억원 이하 1주택자의 보유세를 지자체 조례 개정으로 감면해주겠다고 나섰다. 구청장은 이번 감면 혜택이 ‘너무 작아 죄송하다’는 입장까지 내놓았다.

만약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도 사회가 똑같이 반응했다면 20년간 빈곤정책이 여기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역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조례라든지 살고 있는 집을 재산으로 보지 않는 조례, 지역별 추가 급여 조례 같은 것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아쉽지만 가난한 이들에겐 그런 구청장이 없었다. 빈곤문제는 가난한 이들의 재산과 소득만큼 작은 일로 취급해왔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20주년, 성과를 자화자찬하는 시간이 아니라 이 제도를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이상 죽음으로만 드러나지 않기를 바란다. 부고가 아니라 산 자의 요구에 스포트라이트가 필요한 시간이다. 가난한 이들에게도 허하라, 더 많은 민주주의를!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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