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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노래의 탄생]펄시스터즈 ‘커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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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1960년대 말 활동을 접고 전쟁이 한창이던 월남(베트남)에 가려고 기다리던 신중현의 아침잠을 깨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대박 났어. 주문이 밀려들어 감당할 수 없다고. 지금 월남 갈 때가 아냐.” 레코드사 사장이 신중현을 주저앉혔다. 정확하게 말하면 펄시스터즈의 노래 ‘커피 한 잔’이 신중현을 다시 잡았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팔분이 지나고 구분이 오네/ 일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 내 정말 그대를 사랑해/ 내 속을 태우는구려.”

배인순과 배인숙 자매로 결성된 펄시스터즈가 신중현에게 데뷔앨범을 부탁했다. 1967년 미8군에서 활동하다 다음해 TBC <쇼쇼쇼> 무대에 출연하면서 펄시스터즈라고 작명한 이들 자매가 음악적 스승을 찾아온 것이다. 신중현은 베트남에 가기 전 기념앨범이나 만들자는 심정으로 그들의 앨범을 만들어줬다. ‘커피 한 잔’은 신중현이 록밴드 시절 발표했으나 외면받은 노래였다. 첫 발표 당시 제목은 ‘내 속을 태우는구려’였다. 녹음 당시 레코드사 사장은 ‘절대 인기를 얻기 힘든 괴상한 노래’라고 타박했다.

그러나 훤칠한 몸매와 서구적인 외모로 무장한 펄시스터즈가 이 노래를 부르자 세상은 크게 출렁거렸다. 자매가 부른 ‘님아’ ‘떠나야 할 그 사람’이 동반히트하면서 MBC 가수왕을 차지했고, 앨범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 걸그룹이 핫팬츠에 롱부츠를 신고 무대를 누비자 언론에서도 찬반논쟁이 뜨거웠다.

이들은 ‘준과 숙’이란 이름으로 일본에 진출했고, 미국까지 날아갔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펄시스터즈의 성공이 없었다면 지금 ‘신중현 사단’으로 불리는 가수들도 없었다는 것이다.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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