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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고]출렁이는 농산물 가격, 경매제부터 손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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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올해 무, 배추, 오이, 시금치 등 채소류 가격이 예년보다 높은 수준에서 출렁거리고 있다. 반대로 지난해에는 과잉생산 때문에 채소류 가격이 폭락했다. 농산물 가격의 오르내림은 날씨의 영향을 받지만, 이를 부채질하고 있는 또 하나의 원인은 도매시장의 경직적인 경매제도다. 경매제에서는 매일매일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공산품과 달리 채소류는 생육에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고, 수요가 크게 변하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공급량이 조금만 많거나 적어도 가격 폭·등락이 반복되는데, 경매제는 이를 더욱 부채질하는 역할을 해왔다.

경향신문

김경호 |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매우 독특한 현상이다. OECD 회원국 중 경매제 중심의 농산물 유통구조를 가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모든 선진국은 농산물 유통을 주로 도매상제도에 의지하고 있어 장기적인 계약재배에 의해 생산원가가 보장되는 시장가격을 유지하면서 농산물 가격의 급등락을 예방하고 있다. 생산지와 소비지 간에 도매상을 매개로 유통정보가 수시로 전달되면서 정시, 정가, 정량, 정품의 농산물이 유통되기 때문이다.

경매제 중심의 농산물 유통구조는 과소생산의 시대에는 생산자 보호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러나 이제는 과잉생산이 일상화된 시대이므로 유통구조 역시 변해야 한다. 그러나 경직적인 경매제를 계속 유지해 수많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반복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정부는 거의 매년 시행하는 산지 폐기 등으로 거액의 헛돈을 쓰고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새로운 사회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선 도매시장 경매제도의 개혁과 함께, ‘오프라인+온라인+물류’로 완성되는 미래 도매시장의 기반 구축이 시급하다. 국내 농산물 생산량의 50% 이상을 거래하는 도매시장 유통을 개혁해야 항구적인 농산물 가격안정을 담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관련 법에 이미 규정된 다양한 거래제도가 활성화되고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매 원칙을 과감히 버리고 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도록 관련 법을 전면 개정해 시행하고 있는 일본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로 경매 독점권을 부여받은 가락시장의 5개 도매시장법인들이 지난해 경매 수수료로 벌어들인 수입은 1522억원이었다. 농민들이 피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에서 너무 과도한 수익을 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코로나19, 긴 장마, 태풍으로 농민과 소비자들은 고통받고 있지만, 도매시장법인들은 든든한 돈벌이 수단인 경매 독점권을 지키기 위해 경매제도의 개혁에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제라도 하루빨리 유통주체 간 경쟁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상장예외품목제도’와 ‘시장도매인제’와 같은 다양한 거래제도를 확대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생산자는 생산원가를 보장받아 지속 가능한 영농을 영위할 수 있고, 소비자는 유통단계를 줄여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농안법과 관련 규정은 시대 변화에 맞춰 하루빨리 개정돼야 한다.

김경호 |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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