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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서울대 무림사건' 김명인 교수, 40년 만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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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들 깊은 고통당해"…재판장 직접 사과

"남영동 대공분실에 불법구금, 이근안에 고문당해"

검찰, 고문 재심사건인데도 또다시 실형 구형

CBS노컷뉴스 정다운 기자

노컷뉴스

계엄법, 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명인 인하대 교수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두 번째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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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25. 서울대 무림사건 재심 선고
재판장 "피고인들이 당시에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사회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이 과정(재심)에서도 힘들었던 점에 대해서는 깊은 …(잠시 말을 멈춤)… 동의를. 또 마음으로부터 응원을 보냅니다."

난데없이 경찰에게 끌려가 한 달 이상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당한 후 징역을 살았던 피해자들에 대해 법원이 약 40년 만에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반면 선고에 앞서 검찰은 서면으로 피해자들에게 여전히 실형을 구형하며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부(이관용 부장판사)는 25일 일명 '서울대 무림사건'으로 기소된 김명인 인하대 교수와 박모씨의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은 증거능력이 없어서 증거로 쓸 수 없거나 증거능력이 부족하다"며 "달리 피고인들의 공소사실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고문을 통해 만들어진 진술이거나 조작되고 부풀려진 증거밖에 없는 기소였다고 판단한 셈이다.

서울대 국문과 77학번인 김 교수는 자신의 대학교 졸업논문을 발표한 날이었던 1980년 12월 16일 학교에서 갑작스럽게 연행됐다. 박씨도 성탄절인 12월 25일 누나집에서 경찰들에게 끌려갔다. 이들은 정식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듬해 1월 19일까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차단된 채로 불법구금됐고, 이근안 등으로부터 각종 고문을 당했다.

이들에게는 계엄법 위반과 공산계열 활동에 가담했다는 반공법 위반 혐의가 씌워졌다. 당시 김 교수는 12·12 쿠데타 1년을 맞아 1980년 12월 11일 학내에서 벌어진 군부독재 타도 시위에 참여했는데, 수사기관이 이를 반국가적 활동이라며 공격한 것이다. 김 교수와 박씨가 소지하고 있던 평범한 사회·역사·문학 등의 책들도 '불온서적'의 범주로 들어갔다.

재판으로 넘겨진 김 교수와 박씨는 각각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징역 1년 6개월에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번 재심에서 피고인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어투로 취조를 당했고 알몸으로 진술을 하도록 강요받거나 '죽어나갈 줄 알라'는 식의 겁박을 당했다"며 "실신 지경에 이를 때까지 온몸에 발길질을 당하고 소위 '통닭구이'나 '꺾기' 고문도 받았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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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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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가혹행위 정황을 인정해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위법수집증거로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인들이 원심 법정에서 죄를 인정하는 듯한 진술을 한 것에 대해서도 "불법구금 상태에서 자백을 강요받았던 것으로 의심이 가는데 이러한 부분이 살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의미있는 진술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설사 법정진술이 강압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지라도 피고인들은 학생운동이나 학술 목적으로 서적을 읽고 의견을 나눴다는 사실관계를 인정한 것일 뿐, 독재정권 비판을 넘어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로 김 교수와 박씨는 40년 만에 '전과자' 딱지를 떼게 됐다. 앞서 이들은 1999년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상 특별재심을 청구해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불온서적 보유'는 5.18민주화운동이나 전두환 정권 저지·반대 행위에 해당하지 않아 특별재심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반공법 위반에 대해선 유죄 판단을 유지했고, 이번까지 두 번의 재심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이번 무죄 선고에 앞서 검찰은 여전히 김 교수와 박씨에 대해 각각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 징역 8월에 자격정지 1년을 구형하며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고통에 깊이 동의한다"며 사과한 것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재심개시 사유가 있더라도 모두 무죄를 구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재심 대상 사안의 법리와 증거관계를 다시 검토해 사안별로 의견을 개진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이번 판결문을 검토한 후 상소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선고 이후 김 교수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이렇게라도 (무죄가 선고돼) 감사하다. 그러나 고문 피해로 생긴 병이나 트라우마가 다 치유될 지는 모르겠다"며 "젊은 사람들이 민주적 신념과 권리에 따른 행동을 한 것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다시는 있어서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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