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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서울대 무림사건' 고문 당한 피해자들, 40년만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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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2월 '서울대 무림사건'

영장 없이 경찰에 연행돼 고문

2번째 재심…반공법 위반 무죄

재판부 "피고인들에 응원 보내"

뉴시스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2020.06.10.since1999@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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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가혜 기자 = 1980년 전두환 정권 당시 서울대에서 반독재 학생시위를 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불법 연행돼 고문을 당한 이른바 '서울대 무림사건' 피해자들이 두 번째 재심을 청구해 40년만에 무죄 판결을 거머쥐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이관용)는 25일 김명인 인하대 교수와 박용훈 민청학련 민사재심추진위원의 계엄법 위반 등 혐의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대 무림사건'은 1980년 12월 서울대 학내운동 세력인 '무림'이 전두환 정권의 12·12 쿠데타 1주년을 맞아 학내에서 시위를 주도하자 경찰이 학생들을 대거 불법 연행·구금하고 고문한 사건이다.

집회 이후 김 교수와 박 위원은 줄이어 경찰에 영장 없이 연행됐다. 이들은 1981년 1월 구속영장이 발부돼 집행될 때까지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채 불법 구금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이른바 '남영동 대공분실'에 순차 이송돼 취조를 받았는데, 김 교수는 알몸으로 진술을 강요받거나 '죽어나갈 줄 알라'는 취지의 겁박을 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실신지경에 이를 때까지 온몸에 발길질을 당하거나 '통닭구이'라 불리는 고문도 당했으며, 당시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손목관절이 뒤틀리는 고문도 당했다고 진술했다. 박 위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1981년 최초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각각 김 교수는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박 위원은 징역 1년 6월에 자격정지 2년이었다.

이들은 1999년 재심을 청구해 이듬해 계엄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받아냈다. 하지만 반공법 위반 혐의는 유죄가 그대로 유지된 채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이들은 지난 2018년 두 번째 재심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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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남영동 대공분실) 옥상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다. 2020.06.10. since1999@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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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재판부는 1981년 원심 판결 당시 피고인들의 각 법정진술,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고인 신문조서와 서면 진술서, 그리고 증인신문 조서와 불온서 감정조서 등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은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증거들을 보면, 이들은 수사기관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며 "피고인들이 원심 법정에서 죄를 인정하는 듯한 법정 진술이 있었는데, 이 또한 불법구금 상태에서 자백을 강요받은 것으로 의심되고 고문도 의심된다"고 밝혔다.

또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내용들은 피고인들이 선후배와 함께 사회주의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고 대화하고, 일부는 전단 배포나 집회 등 학생운동을 하고, 학술 목적으로 서적을 읽고 의견을 나눈 사실"이라며 "당시 독재나 경제 체제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넘어 소위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을 갖고 있었다고 법정에서 인정한 건 아니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당시 증인들의 증인신문조서와 불온도서 감정서 등은 증인들의 주관적 견해에 불과하고, 압수물인 이 사건 교양서들 역시 피고인들이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서점에서 구매한 것일 뿐 이적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따라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 선고를 마친 후 "피고인들은 당시에도 그렇고 이후 사회적, 개인적으로도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도 힘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에 대해 깊은 동의를, 마음으로부터 응원을 보낸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재판을 마친 후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 지연이 되더라도 뒤늦게나마 실행이 되니 만시지탄이지만 고맙다"며 "당시가 1980년 겨울이었으니 40년이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당시에는 민주화운동을 위해 희생한다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 그 당시 사회가 얼마나 형편없고 후진적이었는지 (알게됐다)"며 "젊은 청년들이 불법구금과 고문을 감내하면서까지 싸워야했던 점 등을 보면 이상한 나라 이야기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아울러 "판사님의 주문 내용 중 '깊은 공감을 표하고 응원한다'는 말에 굉장히 반갑고 기뻤다"며 "다시는 젊은 사람들이 민주 시민의 신념과 윤리, 권리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gahye_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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