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박여숙화랑 개인전에서 도예가 권대섭 작가가 사발을 들고 있다 . [한주형 기자] |
방탄소년단 멤버 RM(본명 김남준)이 지난해 11월 달항아리를 껴안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 달항아리를 빚은 도예가가 권대섭 선생(68)이라는 것도 써놨다. RM은 지난해 11월 서울 박여숙화랑에서 열린 권대섭 개인전을 방문한 후 경기도 광주시 작가의 집까지 찾아가 달항아리를 구입했다고 한다. 권대섭의 달항아리 평균 판매가는 5만달러(약 5800만원)다. 박여숙화랑에 따르면 RM이 전시장에서 달항아리를 보고 감탄하며 "이게 바로 한국이다. 김환기, 윤형근, 권대섭이 한국미(美) 3대 거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보름달을 품은 듯 넉넉한 자태를 지닌 권대섭의 달항아리는 미국 시카고 미술관, 파리 기메 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을 뿐만 아니라 2년 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5만2500파운드(약 7700만원)에 낙찰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권대섭 개인전 사발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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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박여숙화랑에서 만난 권 선생은 "RM이 우리 집에 와서 달항아리를 구입한 후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주변에서 '사인을 받아달라'는 부탁이 쇄도했다. RM이 내 기사를 다 읽으면서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고 웃었다.
달항아리 작가로 알려진 그가 이번에는 투박하면서도 은은한 사발 100여 점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1978년부터 달항아리와 함께 사발을 빚어왔다고 한다. 장작 가마에 달항아리 4개를 넣고 그 사이에 사발 20~30개를 놓고 굽는다. 그는 "처음에는 사발이 잘 팔렸다. 일본에서 우리 사발을 차(茶) 그릇으로 사용해 수요가 높았다"고 말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 무장이자 정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의 차 스승이었던 센노 리큐(1522~1591)가 조선의 소박한 사발을 토대로 '다완'(찻사발)을 완성했다. 히데요시가 리큐의 다완을 욕심 내 목숨까지 앗아갔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 명품 다완은 훗날 일본의 보물로 지정됐다.
권 선생은 "사발은 원래 조선 식기(食器)였는데 일본에서 귀한 다완이 됐다. 원래 우리 전통에 따라 막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사발 가격은 100만~300만원으로 전시 개막 전에 20여 개를 한꺼번에 사간 컬렉터도 있다.
전시장에 펼친 사발 100여 점 빛깔과 형태는 각양각색이다. 검거나 흙빛이거나 그의 달항아리처럼 뽀얀 사발도 있다. 작다고 빚기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사발은 수정이 불가능해 한 번에 빚어야 해요. 동양화의 일필휘지 같아서 달항아리보다 어려워요. 내공이 있어야 사발을 제대로 만들 수 있죠. 용도를 정하지 않고 흙 특성에 따라 즉흥적으로 빚어요. 앞으로 사발이 달항아리보다 더 비싸질 겁니다."
그에게 달항아리를 능가하는 사발의 매력을 묻자 "설명이 불가능하다. 써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독학으로 사발과 달항아리를 빚어왔다. 원래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인사동에서 우연히 발견한 조선 백자대호에 반해 도예가 길로 들어섰다. 일본 오가사와라 도예몬에서 도자 수학을 하고, 규수 나베시마에서 5년간 조선 도공 흔적을 찾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조선시대 관요가 있던 경기도 광주에 가마를 짓고 도요지를 찾아다니며 도자 파편을 수집해 연구했다. 독학 과정의 어려움을 묻자 그는 "안 팔려서 생활이 어려웠다"면서 "도예 왕따라서 눈치 안 보고 빚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장점이었다"고 답했다.
그도 모르는 사이에 인기가 높아졌다는 달항아리는 2000년대 초반부터 팔리기 시작했다.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달항아리 미학을 예찬하고 조명하면서부터다. '달항아리를 집에 들여놓으면 행복이 온다'는 속설까지 생기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수요가 많은데도 가마를 늘리지 않은 이유는 뭘까. 권 선생은 "혼자 작업하는데 가마가 크면 집중력이 떨어진다"며 "작은 가마에선 사고가 나도 4개만 버리면 된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22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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