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속 25일 온라인 선공개…국내외 작품·퍼포먼스·영화 20여점 선보여
·신기함 넘어…미술관 역할과 인간·비인간 경계짓기 성찰 등 묵직한 주제
반려견을 관람객으로 맞이하는 독특한 전시인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마련됐다. 전시는 코로나19로 25일 오후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된다. 사진은 한 반려견이 정연두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사진 박수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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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는 미술전시회가 마련됐다. 지극히 인간을 위한 공간인 미술관이 개를 관람객으로 맞이하는 실험적이고 독특한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다원예술전시인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전이다.
유례가 드문 전시라 갖가지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품배치나 동선 등 전시장과 미술관 안팎의 환경은 어떻게 구성될까? 개의 작품감상은 얼마나 가능하고 어떤 반응일까? 고양이나 다른 반려동물 등 비인간을 위한 전시도 열릴까? 온갖 물음이 나온다. 나아가 단순한 흥미를 넘어 개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해온 미술관의 기획의 취지, 의미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장에서 한 반려견이 재현된 숲에서 냄새를 맡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사진 박수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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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은 코로나19로 휴관 중이라 25일 오후 4시 먼저 온라인(youtube.com/MMCAKorea)으로 전시회를 선보인다. 이에 앞서 지난 21일 언론에 전시장을 공개했다. 전시는 국내외 작가 18명(팀)의 다양한 장르 작품과 퍼포먼스 등 25점, 영화 3편으로 구성됐다.
전시 특성상 전문가들도 참여했다. 설채현·조광민 수의사가 동물행동·습성의 자문을, 김경재 건축가와 유승종 조경가는 건축·조경자문과 작업을, 김수진 인천대 교수는 법률자문을, 김은희 독립큐레이터는 영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전시장은 그야말로 반려인보다 반려견이 중심이다.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장에서의 반려견. 국립현대미술관 제공(사진 박수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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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작가는 1925년 알래스카에서 전염병으로 부터 아이들을 구하기위해 썰매를 끌어 면역혈청을 옮긴 썰매개 토고·발토를 조각한 ‘토고와 발토-인류를 구한 영웅견 군상’을 선보인다. 작가는 특히 가공육류로 만든 사료를 작품 재료로 써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 사진가 권도연은 북한산 들개를 촬영한 ‘북한산’으로 반려는 커녕 잡히는 대로 죽임을 당하는 들개들을 조명한다.
데멜자 코이는 유전자 변형을 통해 애완동물을 디자인하는 과학자 이야기를 담은 비디오 ‘브리어’로 인간중심주의와 애완 소비문화를 꼬집는다. 소련 우주선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간 개를 3D 모션그래픽으로 만든 김세진의 ‘전령(들)’은 다른 종에 대한 인간의 오만과 우주를 향한 식민주의적 욕망을 비판하며 고양이·침팬지 등 우주로 실려간 동물들을 불러낸다.
한느 닐센과 비르기트 욘센은 각각 카메라를 장착한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의 카메라에 담긴 공원산책 풍경을 2채널 비디오로 선보이고(‘보이지 않는 산책’). 멍멍씨(Mr. Dog)와 인간의 대화를 담은 데이비드 슈리글리와 영화 <정글북>을 재해석한 데이비드 클레어보트의 애니메이션, 엘리 허경란의 비디오 작품들, 베아테 귀트쇼의 사진 등도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중정 잔디밭(왼쪽)과 바깥 마당(오른쪽)에는 조각가 김용관, 조각스카웃의 작품들로 구성된 개 놀이터가 설치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사진 김용관·조각스카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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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바깥 마당과 중정 잔디밭에는 조각스카웃, 조각가 김용관이 개들을 위해 다양한 도구 등으로 꾸민 놀이터도 설치됐다. 전시 외에도 김정선과 김재리·남화연·다이애나밴드·양아치·박보나 작가가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데릭 저먼의 <블루>와 안리 살라의 <필요충분조건>, 장뤼크 고다르의 <언어와의 작별> 3편의 영화도 상영된다.
개를 위한 전시는 신기하고 흥미롭게 다가와 반려견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전시이기도 하다. 비인간인 개를 위한 전시는 인간 중심인 미술관의 기존 역할과 기능에 의문을 제기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미술관에 온 적 없는 반려견을 관람객으로 맞음으로써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포스터. 25일 오후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되는 전시의 현장 관람, 전시기간 등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인류는 인종·종교 등에 따른 인간사회 내부에서의 경계짓기는 물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짓기로 경계 밖 타자에 대한 차별·배제를 지속하고 있다. 저명한 과학사가이자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도나 해러웨이는 2003년 ‘반려종 선언’을 통해 인간도 하나의 반려종이며, 반려종으로 살아가기를 강조했다. 서구의 이성중심주의와 인간과 동물, 남성과 여성, 생명과 기계, 서구와 비서구 같은 갖가지 이분법적 구조, 경계짓기를 비판하며 성찰과 인식전환을 촉구한 것이다.
이번 전시 곳곳에는 해러웨이가 강조하는 개념인 타자를 인정·존중하는 ‘소중한 타자성’과 ‘고통스러운 반려’‘자연문화’ 등을 비롯해 종마다 고유한 자기중심적 세계가 있다는 ‘움벨트’, ‘인류세’ 등 여러 전문가들의 이 시대를 통찰하는 묵직한 개념들이 스며들어 있다.
미술은 물론 수의학, 사회학, 법학 등 다양한 분야의 글과 반려동물 정보를 수록한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 도록이 단행본 형태로 출간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지난 해부터 신선한 전시기획 제안으로 관심을 끈 성용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는 “반려인과 반려견의 관계가 더 심화되고 확대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들이 주는 여러 중층적 의미와 맥락들을 주목해 기획했다”며 “미술관에 (경계짓기에 따른 타자인)반려견을 초청하는 다소 황당한 전시를 통해 인간중심주의, ‘소중한 타자성’,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 가능성 등에 대한 성찰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 도록인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은 단행본 형태로 출간됐으며, 미술과 수의학·사회학·법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글과 반려동물 관련 정보가 수록돼 전시는 물론 반려동물 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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