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보컬그룹 이상과 5명의 아해들' 펴낸 가수 겸 화가 조영남
조영남이 22일 열린 '보컬그룹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 출간 간담회에서 작품 소개를 하고 있다. 작품은 시인 이상의 모습.2020.9.22/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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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이상(1910∼1937)의 연작시 '오감도'는 1934년 7월24일부터 8월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됐다. 총 30편이 실릴 예정이었지만, 이상 시 특유의 난해함으로 독자들의 항의를 받아 15편만 발표됐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한국근대소설 중 가장 유명한 첫 구절, 이상의 소설 '날개'의 도입부 문장이다. 일부는 그의 초현실적이고 난해한 글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대상으로 여겼지만, 결국 그의 작품은 우리의 머릿속 일부를 차지했다.
가수, 그리고 이제는 화가로도 인기를 얻는 조영남은 이상을 고교 시절부터 '사랑'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 교과서에서 '날개'를 읽은 이후 자타공인 '이상 덕후'가 됐고, 그 감정은 7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여전하다. 조영남의 수십 년간 이어진 이상에 대한 천착은 신간 '보컬그룹 이상과 5명의 아해들'(혜화1117)에 드러난다.
신간은 픽션과 논픽션 그 사이를 오간다. 이야기는 조영남과 그의 딸 은지가 대화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등장인물은 피카소, 니체, 아인슈타인, 말러라는 세계 최고의 화가, 철학자, 과학자, 음악가 그리고 이상 작가다.
조영남은 작곡가 말러의 교향곡 제3번을 우연히 들은 뒤 그에게서 이상을 떠올린다. 이후 피카소, 니체, 아인슈타인까지 5명의 천재를 책 위에 끄집어내 '명예'를 강탈한 현상수배범으로 만든다. 이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펼치기로 한다. 그리고 이들의 '두목'이자 '캡틴'으로 이상을 내세운다.
22일 서울 강남구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만난 조영남은 다른 4명의 천재가 자랑하는 업적보다 이상이 더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는 피카소의 입체미술을 예로 들었다. 조영남은 "피카소는 사람의 얼굴에서 보이지 않는 뒷모습까지 그리며 세계적인 화가가 됐다"며 "이상은 그보다 더한, 입체를 넘어선 무형의 것까지 그려낸 사람"이라고 했다. 이어 "시는 보통 낭송이 가능한데, 이상은 낭송할 수 없는 계산식을 시로 써내는 등 위대한 예술을 펼쳤다"고 했다.
조영남은 과거 이상의 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해설서도 펴낸 바 있다. 약 60년이란 기간에 걸쳐 이상을 '사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영남은 "남이 모르는, 어려운 시를 쓰는 사람을 안다는 게 멋있어보였다"라며 "폼나보이려고 그의 추종자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제 인생에 있어 풀어야하는, 그러나 풀지 못하고 죽는 수수께끼가 이상"이라며 "이번 신간도 이상이 세계 최고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나선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했다.
조영남이 이상의 시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20.9.22/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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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영남이 이상에 몰두하는 건 단지 '아이돌 덕후'로서 아닌, 자신이 정말 본받고 싶고 나아가 본인이 이상이 되고 싶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 조영남은 "이상을 흉내내고 싶었다"라며 "이상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살았다. 이상은 나의 전부"라고 말했다.
조영남은 이상을 띄우기 위해 책만 쓴 게 아니다. 그는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이상 탄생 110주년 기념전 '화수 조영남이 그린 시인 이상과 5인의 아해들' 전시도 연다. 전시는 26일부터 10월24일까지 열린다. 또한 이상의 시 '이런 시'의 일부를 가사로 쓴 자작곡을 발표했다. 이 시는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라는 내용이 담겨 연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영남은 이른바 '대작사건' 이후 '이 망할놈의 현대미술'(혜화1117)과 이번 신간을 펴냈다. 가수, 화가, 그리고 작가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는 조영남의 다음 신간은 언제쯤 나올까. 조영남은 과거 이상의 시 해설집을 쓸 때에는 뇌경색으로 입원하기도 할만큼, 노력을 다해 책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동안은 책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조영남은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책의 편집자이자 출판사 대표인 이현화 혜화1117 대표는 "조영남 선생은 이번 원고를 쓰면서 내 평생 마지막 책이 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제가 선생께 1~2년 있다가 다른 책을 쓰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라며 "지금은 온 힘을 쏟아부어서 새책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새로운 집필 가능성을 열어뒀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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