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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아이콘' 긴즈버그 대법관 별세…美대법원 우경화될까(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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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대중문화에 등장하며 전례없는 인기 누려

다섯번째 암투병 중에도 "계속 일하겠다"

리드 對 리드 등 성평등 판결 승리 이끌어…27년동안 대법관으로 재직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美대선…트럼프, 후임자 물색 중

CBS노컷뉴스 박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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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 연방대법관(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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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조계의 큰 별이 졌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현지시각 18일 췌장암 전이에 따른 합병증으로 워싱턴에 있는 자택에서 숨졌다고 미 연방대법원은 밝혔다. 향년 87세.

긴즈버그는 사회적 소수를 두텁게 보호하는 명판결을 승리로 이끌었고, 지더라도 상대의 정곡을 찌르는 독보적인 반대의견을 내왔다.

긴즈버그의 승리는 모든 여성의 승리였고, 모든 여성의 승리는 긴즈버그의 승리였다.

◇80대 대법관, 진보 아이콘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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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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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는 1993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두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지명하기 전부터 미 법조계에 족적을 남겨왔다.

긴즈버그는 1933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는 러시아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겨우 대학을 졸업한 긴즈버그는 552명의 하버드 로스쿨 학생 중 9명의 여성 학생이 됐다.

로스쿨을 졸업한 뒤엔 미국시민자유연합(ACLU·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의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300여건의 성 차별 사건을 맡았고, 그 뒤로 13년 동안 미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일했다. 미 항소법원 판사는 통상 '대법관으로 가는 길'로 통한다.

긴즈버그는 주로 인종차별 소송에서 주로 쓰이던 미국 수정헌법 14조(평등권)를 성 차별 소송에 적용한 것으로 법조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유족 중 남성에게 재산관리인이 될 수 있는 우선권을 주는 주법(state law)이 헌법에 반한다는 리드 대 리드(Reed v. Reed) 판결 등을 이끌어냈다. 이 판결은 젠더 관련 판결 중 "어느 누구도 동등 보호 조항에서 제외돼선 안 된다"는 수정헌법 14조가 처음으로 적용된 사례다.

이같은 명성은 오히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긴즈버그를 지명하는 데 고민거리로 작용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보다 중도적인 인사를 지명해 손쉬운 상원 통과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이에 힐러리 클린턴 당시 영부인이 물밑에서 긴즈버그를 대법관으로 강력 추천하며 클린턴 전 대통령을 움직였다. 결국 클린턴 전 대통령도 "긴즈버그의 남편이 세법 변호사라 인준엔 문제가 없겠다"며 그를 대법관에 지명했다.

대법관이 된 뒤 긴즈버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중절할 권리와 동성결혼 등 미국 사회의 가장 논쟁적인 문제에 대해 찬성 표를 던졌고 때로는 반대의견을 내며 미국 진보 진영의 거목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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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6월 4일(현지시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긴즈버그 연방대법관 후보자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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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군사학교(VMI·Virginia Military Institute)의 여성 입학 불허에 대한 위헌 결정,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 등의 판결을 성취해냈다. "타고난 성별 간 차이점은 있지만, 이같은 차이점이 한 성별을 폄하하거나 개인으로서의 기회를 제한하는 데 이용돼선 안 된다"며 "성별 간 차이점은 여성의 법적, 사회적, 경제적 열위(劣位)를 영구화시켜선 안 된다"는 내용의 판결문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문이다.

이같은 긴즈버그의 논리는 첫 미 여성 연방대법관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1982년 남성도 간호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한 판결에 차용한 논리여서 더욱 뜻깊었다.

다수의견보다 주목받는 반대의견도 꾸준히 냈다.

2013년 미 대법원은 흑인 투표권자들에 대한 차별이 사라졌다며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의 핵심 조항을 대법원이 폐지했는데, 긴즈버그는 "투표 과정의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의 판결은 폭풍이 몰아치는데도 우리는 젖지 않을 것이라며 우산을 내던진 꼴"이라며 반대의견을 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2016년 대선부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후보 시절부터 각종 차별적인 언행을 일삼은 트럼프 대통령이 긴즈버그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긴즈버그는 눈엣가시였다. 그는 2016년 7월 "긴즈버그는 정신이 나갔고 사퇴해야 한다"고 했고, 당선 뒤에도 자신과 관련한 판결에 긴즈버그가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과 싸우고 기득권과 다수의견에 굴복하지 않으며 소수의견을 낸 긴즈버그의 용기는 진보 진영의 심금을 울렸다. 젊은 진보층은 그에게 'Notorious RBG(악명 높은 긴즈버그)'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팬덤을 만들었다. 긴즈버그는 인기 타투(문신)이 됐고, 영화와 웹툰 등 각종 대중문화에 등장했다. 엄숙한 법복에 화려한 레이스 장식을 곁들인 그의 의복은 핼러윈 코스프레의 인기 복장이 됐다. 미국 언론은 "80대 노인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얻은 건 하나의 사회 현상"이라는 분석을 앞다퉈 내놓기도 했다.

◇미국 정가에 파장…대법원 우경화 가속도 붙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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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대법원 행사에 참여한 긴즈버그 대법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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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사망으로 애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법원이 더욱 보수화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5명, 진보 4명'이라는 균형을 깨고 기존의 투표권과 성평등법 등에 위헌 판결을 내릴 인물을 지명할 거라는 우려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파 성향의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를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또 지난 10일 이례적으로 차기 대법관 후보 20명의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결원이 없는데 일명 '쇼트 리스트(The Short List)'라고 불리는 해당 명단이 공개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백악관이 '우클릭'을 드러내놓고 시사한 셈이다.

미국 대법원은 스윙보터 격인 앤서니 케네디 전 대법관의 2018년 은퇴로 급격하게 우경화되기 시작했다. 긴즈버그는 2013년 연방 정부가 부부에게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동성 커플은 받지 못하도록 한 결혼보호법(DOMA·Defense of Marriage Act)에 대해 위헌 판단을 끌어내기 위해 보수 성향의 케네디 전 대법관에게 합헌(다수) 의견을 쓰도록 지명하기도 했다. (미국은 최고령 대법관이 다수 의견을 쓰는 대법관을 지명한다.)

긴즈버그가 암과의 다섯번째 사투를 벌이면서도 "계속 일하겠다"는 성명을 낸 것도 이같은 '대법원의 우경화'와 무관치 않다. 긴즈버그는 1999년 결장암, 2009년 췌장암, 2018년 폐암, 2019년 췌장암으로 각각 치료를 받았다.

한편, 조 바이든 미 민주당 대선후보 등 야권은 대선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온만큼 그 뒤에 새 대법관 후보를 지명하는 게 맞다는 입장을 냈다. 앞서 공화당도 대선이 실시되는 해에 현직 대통령이 대법관을 지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2016년 2월 보수 성향인 앤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이 급사하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메릭 갈랜드 판사를 후임으로 지명했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은 청문회 일정조차 잡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논란이 일더라도 일단 후보 지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오바마케어'를 무력화시키는 데 주력해 왔고, 대법원도 이에 보조를 맞춰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지난 7월 고용주가 종교적인 이유로 직원들에게 피임약 및 임신중단에 대한 건강보험료 지급을 거부하는 것을 허용한 게 그 예다.

긴즈버그의 후임으로 또다른 우파 대법관이 지명된다면 공화-민주 양당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에서 대법원이 연거푸 공화당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가 연출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긴즈버그의 후임을 지명하더라도 상원에서 청문회 일정을 잡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11월 선거 결과에 따라 공화당이 상원에서 다수당을 잃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 트럼프가 지명하는 후보를 낙마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할 수 있다는 것.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12월 중 후보를 지명하고 상원이 청문회 절차에 들어갈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새로운 상원의 임기는 내년 1월 초, 차기 대통령의 임기는 내년 1월 말에 시작하는데 그 전에 공화당 입맛에 맞는 대법관을 지명하고 속전속결로 인준을 마칠 거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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