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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아들 잃은 슬픔 잊기 위해 몰두한 마라톤…이젠 내 삶의 80%”[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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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준식 씨는 매주 수요일와 일요일 새벽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리는 공원사랑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를 달린다. 그는 21년여만에 풀코스를 900회 넘게 달렸다. 칠순마라톤동호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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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대령 공준식 씨(82·칠순마라톤클럽=칠마회)는 마라톤 42.195km 풀코스 1회 완주를 버킷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로 시작해 21년여 만에 900회를 넘게 완주했다. 그에게 마라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들의 죽음을 잊게 해주고,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건강을 챙겨주는 ‘친구’다.

공 씨는 9월 9일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풀코스 900회를 완주했다. 13일, 16일도 풀코스를 달려 총 902회를 완주했다. 대회에서 달린 거리만 3만8059.89km로 거의 지구를 한바퀴 돈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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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준식 씨가 9월 9일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 900회를 완주한 뒤 포즈를 취했다. 한국마라톤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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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에 육군 대령으로 제대하면서 향후 20년간 꼭 해야 할 버킷리스트 3개를 만들었다. 공자께서 인(仁)에 대해 얘기할 때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이라고 했다.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기를 위해 백두대간 종주, 마라톤 풀코스 1회 완주, 책 2000권 읽기를 버킷리스트로 정했다.”

백두대간은 2회 종주했고 마라톤 완주도 했는데 책 읽기만 1130권에서 멈춰 있다고 했다. “60세를 넘기며 눈이 안 좋아져 책 읽기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마라톤 풀코스 첫 완주는 1999년 3월 7일 제2회 서울마라톤에서 했다. 기록은 4시간 13분대. 군공무원 정년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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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준식 씨가 2018년 4월 22일 마라톤 풀코스 700회를 완주한 뒤 칠순마라톤동호회가 기념으로 만든 브로마이드. 공준식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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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완주 후 1년에 1, 2회 풀코스를 달렸다. 그런데 2013년 큰 아들이 46세의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이었다. 그 충격과 슬픔을 잊기 위해 달리기에 몰두했다. 2014년부터 1년에 거의 100회를 완주했다. 가장 많이 완주 한 게 1년에 103회였다. 6연풀(6일 연속 풀코스 달리기)까지 해봤다.”

달리면 복잡한 세상을 잊을 수 있었다. 참고 달리다보면 정신력이 좋아지고 자신감도 생겼다. 당연히 건강도 좋아졌다. 풀코스를 900회 이상 달린 이유다.

“골인 지점을 향해 뛰다 보면 평탄한 길만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인생도 살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나 시련이 있게 마련이다. 마라톤에서는 결승선까지 고통을 참고 이겨냈을 때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그 성취감으로 인생도 개척할 수 있다.”

그는 요즘도 주 2회 풀코스를 완주한다. 공원사랑마라톤에서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달리고 있다. 공원사랑마라톤은 매주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리는데 새벽부터 각자 출발해 완주하기 때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 씨는 “코로나 19로 다른 대회가 다 없어져 실망했는데 유일하게 공원사랑마라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새벽부터 개별 출발이라 뛰고 싶은 사람들은 조용히 와서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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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준식 씨가 16일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를 902회 완주한 뒤 기록증을 들고 엄지척을 했다. 이날 기록은 5시간 49분 39초.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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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씨는 젊었을 때부터 즐겼던 등산으로 다져진 체력을 바탕으로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백두대간은 물론 전국에 안 가본 산이 없다고. 히말라야 3회, 키나발루, 백두산도 올랐다. 집(서울 송파)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은 1500회 이상 올랐다고 한다. 그는 “마라톤 하면서도 서울둘레길을 8번 돌았다. 9번째 돌다가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좀 자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한 때 웨이트트레이닝도 꾸준하게 했지만 요즘은 등산과 보조 운동으로 체력을 다지고 있다. 공 씨는 “방선희마라톤 교실 때 배운 제자리에서 다리 직각으로 들어올리기를 하루에 각 발 1000개 씩 한다. 그래야 30km 이후를 버틸 수 있다. 30km를 넘어가면 다리가 올라가지 않는데 이 운동을 하면 거뜬히 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제대로 달리기 위해 국가대표출신 방선희 감독이 운영하는 마라톤 교실에서 두 번 교육을 받았다.

“마라톤은 자세가 중요하다. 바른 자세로 달려야 무릎 등 관절에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난 10여 년 전부터 매년 무릎 관절을 찍어 정밀하게 검사한다. 아직 무릎이 깨끗하다. 의사들이 20년은 더 달릴 수 있다고 한다.”

공 씨는 마라톤마니아 김학윤 김학윤정형회과의원 원장에게 매년 검진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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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준식 씨가 2015년 1월 24일 마라톤 풀코스 400회를 완주한 뒤 칠순마라톤동호회가 기념으로 만든 브로마이드. 공준식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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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젠 체력이 달려 계속 기록이 떨어지고 있다. 이젠 5시간 30분 정도에 달린다. 그래서 김학윤 원장, 고려대 서승우 교수(정형외과) 등에 물어봤다. 계속 달려도 되냐고? 그랬더니 ‘천천히 즐기면서 달리라’고 조언한다. 안 달리면 체력보다도 정신이 무너진다고. 사실 내 삶의 80%가 달리기에 집중돼 있다. 만일 안 달리면 바로 리듬에 깨져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계속 달리려고 한다.”

공 씨는 풀코스 1000회 완주를 목표로 달리진 않겠다고 했다. 목표를 설정하면 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힘닿는 대로 천천히 즐기면서 달릴 생각이다. 그의 마라톤 풀코스 개인 최고기록은 70세에 세운 3시간 39분대. 이젠 5시간 30분에 완주도 버겁다. 하지만 달리는 게 즐겁다. 그는 “젊을 땐 돈과 권력을 부러워하고 추구한다. 나이 들면 건강이 최고다. 100세 시대 건강하지 않으면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골골 누워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노년의 건강은 운동으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라톤을 하면서 감기 한번 안 걸렸다고 했다.

“50세에 담낭을 제거해 소화가 안 됐었다. 달리면서 소화도 잘 됐고 잔병치레 한번 안했다. 나이가 들면 이러저러 잔병이 오는데 난 어떤 질환도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

공 씨는 정부차원에서 노인들에게 운동할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5,6년 전 칠마회 회장을 할 때 우리 회원들의 건강보험공단 진료비 지출 내역을 뽑아 봤다. 연평균 95만 원으로 당시 70대 평균인 300만 원의 3분의 1도 안 됐다. 국가 차원에서 노인들에게 운동할 기회를 주면 노인 개인에게는 건강한 삶을, 국가적으로는 의료비를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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