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새누리당-2016년 민주당-2020년 국민의힘
정부·여당 추진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4년 전 '중점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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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경제민주화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그럼 우리나라 헌법이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말인가? 헌법 수호는 보수주의의 기본일진대 이 사람들은 우리나라 헌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가짜 보수주의자들인 셈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3월 발간한 회고록 중 일부다. 2012년 새누리당에 몸 담고 있던 때 경제민주화에 반대했던 당내 인사들에 대해 일갈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과 보수야당을 오가는 행보를 보였지만 경제민주화에 대한 소신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가 정치의 전면에 서면 경제민주화도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김종인표 경제민주화'는 4년을 주기로 등장한 셈인데 이번이 세번째다.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통합감독법 등 정부ㆍ여당이 내놓은 '공정경제 3법'에 그가 동의의 뜻을 표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김 위원장이 2016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시절 제시했던 경제민주화의 내용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초 "두 사람(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완전히 속았다"고 언급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집권 이후 공약을 지키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 역시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고 재우쳐 비판해 왔다. 김 위원장은 민주당을 탈당하기 전인 2017년 3월,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 구성원 중에서 그것(경제민주화)에 대해서 열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은 압도적 의석 수를 확보한 민주당이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강조하고 있으며, 국민의힘도 새로운 강령에 경제민주화를 반영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평생의 소신이자 숙원을 이룰 기회를 잡은 셈이다. 개인적으로 보면 권력을 노린 '철새'가 아니라 정책적 소신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행보로의 평가를 굳힐 수 있다. 무엇보다 '속아온' 정치 활동의 반전이 가능하다.
발등의 불이 떨어진 곳은 재계다. 재계는 줄곧 경제민주화 정책들이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 활동을 침해하고 결국 국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란 주장을 펼쳐왔다. 지난 16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6개 단체는 공동 성명을 통해 "상법, 공정거래법 통과시 기업의 경영권 위협이 증대되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쓰여야 할 자금이 불필요한 지분 매입에 소진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맞지 않는 갈라파고스적 규제로, 도입시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국가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을 내기 전날인 15일에는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이 김 위원장을 찾아가 이 같은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재계는 기업 규제에 반대해온 기존 보수 정당의 원칙을 바라고 있으나, 김 위원장의 기업관으로 보면 단호하다. 그는 지난 14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기업 측 반대에 대한 질문에 "기업은 항상 그런 소리하는 사람들"이라며 "정치하는 사람이 기업 말을 들어서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 일축한 바 있다.
전경련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여실히 표출해 왔다. 2016년 10월, 국회에서 열린 '전경련, 왜 문제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그는 "(전경련의) 순기능이란 걸 찾아보기 어렵다"며 "막강한 경제력으로 정부의 입법과정에도 참여하는 데 사회의 조화와 합리적인 성장에 기여하는 바는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나게 된 것도 저 사람들 감언이설에 속아 정부가 정책을 잘못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재벌의 탐욕'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비판하기도 했다. 2013년 발간된 '경제민주화 멘토 14인에게 묻다'에서 김 위원장은 "재벌의 탐욕과 관련해서 일자리 창출은 고사하고 일자리 파괴부터 막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창조적 파괴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인용해 "국가가 정한 법률과 관행을 지키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가장 애국적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기업가의 혁신을 통한 이윤 창출을 강조한 학자인데,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라는 틀 내에서의 이윤 추구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론이 국민의힘 당 차원으로 총의가 모아질 지는 아직 미지수다. 여전히 당내에는 기업 규제의 강화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정강정책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던 김병민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김 위원장은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헌법에 명시된 경제민주화를 구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면서 "당내 구성원들과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기본소득을 제시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당내 의견들이 모아져 나가는 과정을 보인 바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개정한 것도 특정 지지층이나 세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다수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일은 진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당장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부와 민주당이 발의한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다수 대기하고 있다. 이는 김 위원장이 4년 전, 더 길게는 8년 전 제시했던 공약들과 판박이다. 2016년 민주당 비대위 대표 시절, 중점 추진할 경제민주화 과제 34개를 내놓았던 것이다.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 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 중 집중투표제는 이번 정부 발의 법안에는 빠져있으나 김 위원장은 한 발 더 나아간 내용을 주장했던 것이다. 김 위원장이 민주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던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현재 집중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재계가 소송 남발을 우려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역시 김 위원장의 소신 중 하나이며,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성과공유제 확대, 가맹점 보호 강화, 대형 복합쇼핑몰 규제 강화 등이 모두 동일하다.
이에 대해 김 비대위원은 "앞으로 추가적인 김종인표 경제민주화 정책들이 더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와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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