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 행정장관은 17일 저녁(현지시간) 방영된 중국 국영방송사 중국국제텔레비전(CGTN) 인터뷰에서 "내 개인적인 차원에서 신용카드를 쓸 수 없어 불편함을 겪고 있다"면서 "왜냐하면 금융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해당 기관들이 미국 기업과 관련됐는 지 여부를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불만을 토했다. 다만 그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무의미하며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지위와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인식한 발언을 덧붙였다. 이밖에 람 장관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역사적인 순간에 인민 정부가 국가 안보 보호를 위해 만든 법을 시행할 수 있도록 본토 정부의 신뢰를 받는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다는 점"이라고 본토 지도부를 치켜세웠다.
다만 람 장관의 신용 카드 사용 불만은 지난 7일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이 성명을 내고 "람 장관 등 11명은 홍콩의 자율성과 홍콩 시민의 집회·표현의 자유를 해친 데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인물들"이라면서 이들에게 금융 제재를 발표한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11명 중에는 중국 국무원 소속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샤바오룽 주임 등 본토 관료들도 포함됐다.
미국 재무부의 제재는 해당 인사들의 비자 발급 제한과 더불어 이들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시키고 관련 거래를 금지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당시에는 미국 카드 사용 제재 관련 사항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가 이번 람 장관의 불평을 계기로 주목을 받았다. 블룸버그 통신은 람 장관의 카드 사용과 관련해 미국 업체인 비자 카드와 마스터카드 측에 관련 사항을 문의했으나 별다른 답변이 없었다고 이날 전했다.
다만 제재 대상자들이 거래한 주요 홍콩 영업 은행은 대부분 미국에 지점을 두거나 본사를 두고 있고, 달러화 거래를 해야 하는 글로벌 금융 시장 구조 상 미국 재무부 제재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제재 대상자들의 신용 카드 거래도 금지될 것이라는 전문가 예상이 나온 바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홍콩에서 영업하는 은행 중 중국 국영 은행인 쿤룬 은행이 미국 제재 대상인 이란과 거래했다가 지난 2012년 제재 받아 달러 거래를 정지당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은행권 자금 외에 주식이나 채권 같은 자산 운용도 차단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서 미국 측 제재 발표 직후 홍콩에서는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과 HSBC은행, 싱가포르 DBS은행 등이 "유엔과 유럽연합(EU), 미국 금융 서비스가 닿는 사법관할 구역 제재 법규와 규정을 지키겠다"고 선언했고 온라인 사회연결망 서비스(SNS) 업체인 페이스북도 "우리 회사의 서비스는 미국 법에 따라 제한된다"고 밝힌 바 있다. 람 행장장관 등 제재 인사 관련 계정은 광고 마케팅 등 자금이 오가는 서비스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달 들어서는 홍콩에서 영업 중인 중국 국영 은행도 미국 재무부 제재에 따르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대출 업무를 하고 있는 뱅크오브차이나와 중국 건설은행, 중국 상업은행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제재 대상 인사 11명이 새 계좌를 만들려고 할 때 이전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한편 18일 람 장관은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와 관련한 제 3차 통제 조치를 발표할 것 예정이다. 현재 홍콩은 코로나19를 이유로 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기존보다 1주 더 연장해 오는 25일 만료를 앞두고 있다. 람 장관이 이끄는 홍콩 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는 9월 열려던 입법회(홍콩에서 의회 역할을 하는 기관) 선거를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이유로 1년 연기한다고 지난달 31일 밝힌 바 있다.
람 장관은 오는 10월 14일 연례 정책 연설에 나설 계획이다. 10월 정책 연설에서는 지난 주 월요일 대표적인 '반중(反中) 언론' 홍콩 빈과일보의 지미 라이 회장이 '홍콩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체포된 후 첫 기자 회견이 열릴 예정이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 본토에서 시진핑 국가 주석을 위시한 주요 상무위원들이 비밀리에 회의를 열고 최고 현안을 논의하는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린 것으로 알려져있다. 회의가 열린 경우 홍콩 보안법 강행과 이에 따른 미국 제재, 글로벌 사회의 중국 비난 여파가 논의됐을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른 정책 지침이 람 장관에게도 전달됐을 것으로 보인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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