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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지상낙원 모리셔스의 침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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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신이 모리셔스를 먼저 창조하시고, 그것을 본떠 천국을 만들었다.”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아프리카 남동부 작은 섬나라 모리셔스에 다녀온 후 이렇게 말했다. 천혜의 절경, 다양한 생물 종을 자랑하는 ‘지상낙원’ 모리셔스가 최근 일본 화물선의 기름 유출로 신음하고 있다. 원상복구에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일본 해운사 쇼센미쓰이의 화물선 와카시오호가 중국에서 브라질로 향하던 중 지난 7월 25일(현지시간) 밤 모리셔스 남동부 그랑포트 부근 암초에 걸려 좌초됐다. 연료탱크에 균열이 생기면서 8월 6일부터 기름이 새기 시작했는데, 최소 1000톤 넘게 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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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현지시간) 모리셔스 남동부 해안에 좌초한 일본 화물선 와카시오에서 기름이 흘러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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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셔스 정부는 이튿날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일본은 해상보안청 방제 전문가 등 6명으로 구성된 전문가팀을 파견했다. 과거 한때 모리셔스를 식민지배했던 프랑스는 모리셔스 부근 프랑스령 레위니옹에서 기술 자문단과 해군 함정, 군용기를 파견했다.

모리셔스 국민의 해양 정화 활동은 더욱 필사적이다. 수천명의 자원봉사자가 들에서 베어온 사탕수수 잎과 짚으로 속을 채운 자루들로 기름 확산 방지 담장을 만들어 바다에 띄웠다. 물속 기름을 빨아들이는 데 효과가 있다며 머리카락을 기부하는 시민도 있다.

하지만 깨끗한 모리셔스로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석유 속 무거운 입자가 수중 산소공장 역할을 하는 산호초 군락을 상당 부분 뒤덮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기름 제거 작업에 참여한 환경운동가들은 장어와 불가사리들이 폐사해 바다에 떠다니고, 바닷게와 새들도 죽고 있다고 전했다. 기름은 아열대 습지와 해변에서 자라는 맹그로브숲과 모래톱에까지 달라붙었다.

그럼에도 모리셔스 국민이 해양 정화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깨끗한 바닷물로의 복귀가 곧 풍요로운 일상으로의 복귀이기 때문이다. 모리셔스는 196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탕수수 플랜테이션(농업농장)으로 착취당하기만 했다. 이후 관광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었다. 2019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만928달러로 세이셸, 적도 기니 등 대표적인 아프리카 고소득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오늘날 모리셔스의 경제성장 배경을 지리적 이점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인도양 한복판으로 아프리카 대륙과 멀리 떨어져 있어 인근 국가들의 정치 불안에 휘말릴 위험이 적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리적 이점은 한때 모리셔스에 살았다가 멸종한 도도새의 사례에서 보듯, 작정하고 들어오는 외부 세력에는 별 소용이 없다. 도도새는 1681년 최초 발견된 지 100년 만에 멸종됐다. 네덜란드가 모리셔스를 유배지로 정한 뒤 넘어 들어온 쥐, 원숭이, 돼지 등이 도도새 알을 모조리 먹어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모리셔스 해안경비대의 경고를 무시하고 육지 가까이서 운행하다 모리셔스를 ‘기름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와카시오호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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