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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해일 같은 강물에 밥 먹던 온가족 도망쳐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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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남원(전북)=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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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남원 금지면 용전마을 주택가에서 수거된 쓰레기. 용전마을은 지난 8일 발생한 수해로 침수 피해를 입었다. /사진=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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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 수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냄새가 코를 찔렀다. 쓰레기와 음식물, 축산 농가에서 쓸려온 분뇨가 한데 섞여 엄청난 악취를 풍겼다. 마을 한편에는 각종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가정집에는 아직 걷어내진 못한 진흙이 가득했다. 물난리는 진정이 됐지만 쓰레기와 전쟁이 시작됐다.

12일 기자가 찾은 남원 금지면은 섬진강 제방이 무너진 곳으로 이번 장마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다. 7~9일 3일간 남원지역에는 500mm가 넘는 집중호우가 쏟아졌고, 금지면 강가의 귀석·하도·용전 마을을 둘러싼 제방은 거센 강물을 이겨내지 못하고 100m가량 유실됐다.

남원시에 따르면 11일 오전 기준 농경지와 하우스 1335개소, 축사 39농가, 주택 601가구 등 2208개소가 피해를 입었다. 인명피해는 없으나 약 79만7000마리의 가축 피해가 발생했다. 125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이날 오전까지도 270여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해일같이 밀려온 강물에 먹던 밥도 두고 도망"..."평생 남원에 살았는데, 이런적은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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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무너진 남원 금지면 인근 섬진강 제방을 다시 세우기 위해 공사하는 모습. 지난 8일 섬진강 제방이 무너지며 금지면 일대 마을로 강물이 들이닥쳐 큰 수해를 입혔다. /사진=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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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면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윤은정씨(43)는 5~6명의 식구들과 함께 마트 앞에서 냄비나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씻어내고 있었다. 불 꺼진 마트 내부 진열장은 텅 비어있었다. 마당에는 가재도구와 함께 과자 상자, 음료수 병 등이 남아 있었지만 물에 젖은 물품은 대부분 팔 수 없다.

윤씨는 "당시 어린이인 조카 3명을 포함해 식구 10명이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250m 앞에서 까만 흙탕물이 승용차보다도 높은 높이로 밀려오는 것을 목격했다"며 "해일 같이 밀려오는 강물에 먹던 밥을 그대로 두고 식구들과 차를 타고 도망가 살았다"고 회상했다.

윤씨는 "이후로 밤에 잠도 잘 못자고 비만 오면 '외출 말았어야 했나' 하고 불안해지는 등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말했다. 함께 가게를 정리하던 이순자씨(68)는 "만약 밤에 강둑이 무너졌으면 많은 사람들이 도망도 못 가고 큰일을 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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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이 남원 금면리 주민 김인수씨(84)의 집 정리를 돕는 모습. /사진=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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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건물의 하얀 벽면에는 사람 키 높이보다 높은 곳에 갈색 줄무늬가 생겼다. 그만큼 물이 차올랐다는 뜻이다. 수압을 이겨내지 못한 집은 절반이 주저 앉았다.

김인수씨(85)는 "평생 남원에서 살았는데 섬진강이 넘쳐 물난리가 일어난 적은 처음"이라며 "물이 찬 뒤 집 2층으로 올라가 외부에서 대준 보트를 타고 대피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딸인 김영순씨(50)는 "물이 빠져나간 날부터 부모님 댁 정리를 도우러 매일 순천에서 온다"며 "이곳은 특히 노인들만 사는 가구가 많은데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수해를 복구하느라 모두 몸도 마음도 힘들어하시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남·북 5개 지자체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정부 "조사 끝나는대로 지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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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촬영한 금지면의 무너진 가옥. 금지면 일대는 지난 8일 입은 수해로 가옥이나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 등 피해를 입었다. /사진=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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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전남·북 5개(남원, 임실, 순창, 곡성, 구례) 지자체들은 이번 재해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로 인한 대형 참사로 규정하고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지자체는 섬진강댐 하류지역에 대해 조속히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 지역 단체장은 “한국수자원공사 등은 댐 관리 기관은 집중호우가 예보됐음에도 선제적 방류는커녕 담수만 고집하다 섬진강의 수위가 최고 높아진 지난 8일 오전 댐의 최대치인 초당 1870톤의 물을 긴급 방류했다”며 “이 때문에 물난리를 겪어야만 했다”고 성토했다.

윤은정씨도 "애초에 제방도 튼튼히 짓지 못한데다가 물 조절도 실패해 일어난 인재"라고 지적했다. 김영순씨는 "그릇, 냄비 등 닦아서 쓸 수 있는 도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버려야 한다"며 "하루빨리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돼 지원금이 나와야 그나마 생활이 복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현재 기존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가능한 빨리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며 "전남 각 지역의 피해를 조사중인데, 조사가 끝나는대로 선포하고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원(전북)=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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