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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친구가 건넨 법원행정처 문건…사법농단 법정 현직 대법관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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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동원 대법관이 전·현직 대법관으로는 처음으로 사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증언했다. 이 대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개입한 의혹을 받는 통합진보당 행정소송의 2심 재판장이었다. 이 대법관은 법원행정처 문건을 전달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문건 영향을 받아 판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1시간40여분간 증언했다.

임 전 차장은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 이후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원 지위를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를 받고 있다. 의원직 상실 여부에 관한 판단 권한이 법원에 있다고 판결해야 법원 위상이 높아진다는 게 법원행정처 기조였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이 법원에 판단 권한이 없다며 각하 판결을 내리자 법원행정처가 대책을 마련하고 2심 재판에 개입했다는 게 검찰 공소사실이다. 양 전 대법원장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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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대법관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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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법관은 2016년 3월3일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함께 점심심사를 한 뒤 ‘한번 읽어보라’는 말과 함께 통진당 사건 관련 문건을 건넸다고 증언했다. 정기인사로 서울고등법원에 온 이 대법관에게 사법연수원 17기 동기로 평소 절친했던 이 전 실장이 밥을 먹자며 연락해왔고,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막바지에 문건을 줬다고 했다. 이 대법관은 “35년 된 제일 친한 친구”라고 이 전 실장을 표현했다. 이 대법관은 자신은 별다른 응답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판사는 다른 사람이 사건에 대해서 말하면 일단 침묵한다. ‘잘 검토해보겠다’고 말했을 수는 있는데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이 전 실장은 ‘통진당 국회의원 지위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1심 판결)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게 이 대법관 증언이다. 이 전 실장이 ‘기일을 언제 할 것이냐’고 물어봤다고도 했다.

이 대법관은 ‘사건 관련해 문건을 주는 게 과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검사 질문에 “기분이 나빴다. 재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조심스럽고, 재판부 입장에서는 불쾌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법원행정처가 재판부에 문건을 전달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이 대법관은 “법원행정처는 재판 지원기관이기 때문에 재판부가 행정처에 검토한 자료가 있는지 묻는 것은 정당하지만, 법원행정처가 거꾸로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외부에서 재판에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전 실장의 문건 전달이 ‘선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기획조정실장은 법원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며 “기획조정실이 법원의 정책 결정 등을 많이 하기 때문에 헌재와의 관계에서 (이 사건에) 관심이 있나보구나 정도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이 전 실장이 사건에) 관심이 있고 법원행정처에 정리된 자료가 있으니까 참고하라고 악의 없이 준 것”이라며 “지금도 이민걸 부장에 대해 섭섭하다는 생각은 안 한다. 자기 나름대로 선의에서 자료를 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사무실로 돌아와 이 전 실장이 준 문건을 읽어봤다고 말했다. 문건에는 통진당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에 관한 판단 권한이 법원에 있고, 의원직을 유지하거나 상실한다고 볼 경우에 대한 각각의 논거 등이 적혀 있었다. ‘내용이 와닿지 않아 한 번 읽고 더 보지는 않았다’는 게 이 대법관의 말이다. ‘문건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됐던 것 아니냐’는 검사 질문에는 이 대법관은 “법리적인 부분 관련해 법원행정처 자료에 참고할 부분이 있을까 싶어서 봤다”며 “안 읽었으면 더 떳떳할 텐데 (문건을) 읽어서 지금 면목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이어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 리허설 때부터 스스로 (법원행정처 문건을 받았다는 사실을) 다 이야기했다”며 “숨길 게 없다”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법원행정처 문건을 판결에는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대법관은 “심적 부담감은 없었다”며 “재판은 법관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역사가 알아서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심과 달리 이 대법관이 내린 2심 판결의 결론은 의원직 상실 여부에 관한 판단 권한이 법원에 있다는 것이었다. 법원행정처 기조와 일치한다. 다만 의원직은 상실된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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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기관 관련 일러스트.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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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이 대법관이 이 전 실장과 식사한 날 오후 법원 내부통신망에서 통진당 사건을 검색하고, 기일을 지정했다는 점을 들며 이 전 실장이 심리에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이 대법관은 “그 날(이 전 실장을 만난 날) 기일을 지정한 것은 맞다”면서도 “통상 3월 초에 기일 지정이 이뤄지고, 통진당 사건이 적시처리 사건이라는 것을 늦게 알아 더 이상 (처리를) 미루기 어렵다고 생각해 기일 지정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문건은 공직선거법 해석이 주된 내용이지만, 자신의 관심은 공직선거법이 아니라 헌법 관련 부분이었기 때문에 문건과 2심 판결은 관련 없다는 취지도 밝혔다.

검찰은 이 전 실장의 문건 전달 자체로 이 대법관의 재판권 행사가 방해됐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임 전 차장 측은 판사가 심리 과정에서 다양한 자료를 검토할 수 있다며, 법원행정처 문건도 그 중 하나일 뿐이라 재판권 행사 방해가 아니라고 했다.

이 대법관은 증언을 마무리하며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윤종섭 재판장 질문에 “대법관으로서 증인석에 앉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재판에 필요한 일이고, 형사재판을 해본 사람 입장에서는 누구든지 증거로 제출된 서면에 공방이 있을 때 (증인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증인석에 서서 이 사건의 무게감으로 재판부가 많이 고생한다고 생각했다. 잘 마무리돼서 좋은 재판으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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