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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레바논 베이루트 대폭발

레바논 내각, 결국 총사퇴 … "대통령·총리 지난 달 폭발 위험 보고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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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내각이 베이루트 폭발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10일(현지시간) “베이루트 폭발은 고질적은 부패의 결과”라면서 자신을 포함한 내각이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지난 4일 폭발 참사가 발생한 지 6일만, 내각 출범 7개월 만이다.

16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가 인재(人災)란 사실이 드러나면서 연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까지 벌어지자 불명예 퇴진을 한 것이다. 차기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현 내각이 임시로 업무를 맡는 과도 정부 체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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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 총사퇴를 발표한 하산 디아브 총리(오른쪽)가 10일 미셸 아운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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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이 총사퇴를 발표했지만, 레바논 국민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디아브 총리가 사퇴를 발표한 이 날에도 베이루트 도심과 국회 건물 주변 등에선 대규모 정부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보다 근본적인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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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레바논 반정부 시위대가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시위대가 던진 폭죽이 화염을 일으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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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과 디아브 총리가 베이루트항에 쌓여 있던 질산암모늄의 폭발 위험성에 대해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이미 보고를 받았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통령과 총리가 대형 폭발 발생 위험을 알고 있었음에도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유엔은 참사의 여파로 2주 반 안에 레바논에서 식량이 고갈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국제사회의 원조를 호소했다.



"폭발 참사, 부패 결과" … 정국 격랑 속으로



디아브 총리는 10일 TV 연설을 통해 내각 총사퇴를 발표하면서 “부패 시스템이 국가보다 크다”고 말했다. 레바논 정치권의 고질적인 부패를 내각 책임자로서 인정한 것이다. 앞서 장관들과 국회의원들도 베이루트 참사에 책임을 지고 잇따라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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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디아브 총리가 10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내각 총사퇴를 발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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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베이루트항에서 발생한 대폭발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폭발을 일으킨 질산암모늄 2750t이 베이루트 항만 창고에 6년간 방치돼 있었던 데다 정부 관료들이 이를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10일 로이터통신은 안보 당국자들이 지난달 20일 아운 대통령과 디아브 총리에게 베이루트 항구에 저장된 질산암모늄 2750t이 폭발할 경우 수도가 파괴될 수 있다고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자체 입수한 레바논 국가안보국(NSC) 보고서와 고위 안보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근거로 이같이 보도했다. 지난 4일 베이루트 참사의 과정이 기술돼 있는 해당 보고서에는 아운 대통령과 총리가 지난달 20일 서한 한 편을 받았다고 써 있다고 한다. 이 서한에는 베이루트 항구에 방치된 질산암모늄을 즉시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사법당국의 조사 결과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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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반정부 시위대가 장벽을 부수려고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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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한 작성에 관여한 한 당국자는 “질산암모늄이 도난당하면 테러 공격에 쓰일 위험이 있었다”면서 “폭발하면 베이루트가 파괴될 수 있다고 (대통령과 총리에게) 경고했다”고 말했다.

다만 로이터통신은 대통령과 총리에게 전달된 서한 내용을 직접 보진 못했고 서한에 관한 당국자 발언의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아운 대통령은 질산암모늄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시인하면서도 “최고국방위원회에 필요한 조처를 하라고 지시했다”면서 “그 물질이 어디에 있고,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반정부 시위 계속 … 외교부, 여행경보 '철수 권고'로 상향



내각이 총사퇴했지만, 반정부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디아브 총리가 총사퇴를 발표한 10일에도 시민 수백명이 시위를 벌여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 참가자 앤서니 하셈은 내각 총사퇴와 관련해 “그것은 큰 변화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도 “내각 사퇴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우리는 대통령과 국회의장을 끌어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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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레바논 경찰이 반정부 시위대와 충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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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는 기득권을 타파하는 근본적인 정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종파들끼리 권력을 분점한 독특한 정치 구조가 부패와 무책임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나눠 맡고 있다. 정치권력이 선거로도 근본적으로 교체되지 않는 것이다.

이같은 정치 부패와 오랜 경제난에 대한 불만이 쌓인 가운데 폭발 참사까지 일어나면서 국민 분노가 폭발했다. 레바논은 치솟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실업률, 통화 가치 폭락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

지난 3월엔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하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1975년~1990년 내전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란 평까지 나왔다. 이런 와중에 벌어진 폭발 참사로 집을 잃은 이재민이 30만 명 발생했고, 경제적 피해는 150억 달러(약 17조원)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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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레바논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돌을 던지려고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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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한 청년은 뉴욕타임스(NYT)에 “우리는 잃을 게 없다”면서 “졸업한 지 얼마 안 됐다. 건축가인데 일이 없다. 나라를 바꾸든지 우리가 여길 떠나든지 둘 중 하나”라고 분노했다.

외교부는 레바논 베이루트의 여행경보를 3단계(철수 권고)로 상향 조정했다. 폭발 참사로 의료 체계가 마비되고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는 등을 감안한 조치다. 외교부는 현재 베이루트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에게 긴요한 용무가 아닌 한 철수해 줄 것을 권고했다.



유엔 "레바논, 2주 반 안에 식량 고갈" 우려



유엔은 10일 레바논에서 2주 반 안에 빵이 바닥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이날 유엔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한 레바논 상황에 관한 원격 브리핑에서 “2주 반 안에 레바논에서 빵이 다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매우 우려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레바논은 곡물의 대부분을 수입하는데 폭발 참사로 파괴된 베이루트항이 레바논 곡물 수입의 85%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즐리 사무총장은 “2주 안에 1만7500t의 밀가루를 실은 배가 베이루트에 도착해야 모든 레바논 국민의 식탁에 빵을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긴급 원조를 호소했다.

WFP는 식량난이 우려되는 레바논에 밀가루 5만t을 보낼 예정이라고 로이터통신이 11일 보도했다. 또 열흘 안에 1만7500t의 밀가루를 실은 배가 베이루트에 도착할 예정이며 이 밀가루가 한 달 동안 레바논의 빵집들에 공급될 것이라고 WFP는 밝혔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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