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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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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뉴질랜드 “성추행 외교관 송환” 쉬쉬하다 화 키운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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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총리 이어 외교장관 압박

“한국 외교관 와서 조사 받아라

문 대통령도 알고 있는 사안”

정부 “개인 문제” 치부하다 망신

중앙일보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오른쪽)와 윈스턴 피터스 부총리 겸 외교장관이 5월 의회로 향하는 모습. 이들은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에 달린 문제“라고 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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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한국 외교관이 결백하다면 이곳에 와 사법절차를 따라라.” 1일(현지시간) 윈스턴 피터스 뉴질랜드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이 한국 외교관 A씨의 성추행 의혹을 다룬 현지 방송에 나와 한 말이다. 이어 “이 문제는 이제 최고위급까지 올라가 문재인 대통령도 알고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8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 문제를 거론한 걸 재차 언급하며 압박한 것이다. 피터스 부총리는 한국 내에서 해당 사건이 큰 이슈가 되는 것을 두고 ‘국가적 망신(national disgrace)’ 때문에라도 A씨가 옳은 일을 하기를 바란다고까지 말했다. 우리로선 두 번씩이나 공개 망신을 당한 셈이 됐다.

외교부는 부랴부랴 대응책 마련에 나서는 분위기다. 내부에선 뉴질랜드의 외교 공세가 ‘이례적’이라며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지만 문제의 성추행 의혹은 2017년 뉴질랜드대사관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건이 이렇게 커질 때까지 3년간 정부는 무엇을 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최근까지 이번 사안에 대해 정부는 개인 문제라며 감추기로 일관했다. 지난달 25일 현지 언론이 해당 사건을 ‘성적 폭행(sexual assault)’으로 규정하며 심각하게 보도했을 때도 외교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사흘 뒤 아던 총리가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문제를 제기한 뒤에도 청와대는 아던 총리의 발언 대부분이 덕담이었다고 밝혔다. “(성추행 의혹 문제는) 통화 말미에 짧게 나온 것”이라며 “뉴질랜드 총리가 자국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언급했고, 문 대통령은 관계부처가 사실관계를 보고 처리한다고 한 게 전부”(29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라고만 했다.

하지만 아던 총리는 1일 “한국 정부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A씨에 대한 면책특권을 유예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나는 문 대통령에게 실망을 드러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이런 우려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였다”면서다.

‘쉬쉬’하는 분위기는 사건 초기부터 시작됐다. A씨는 대사관 내부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뒤 2018년 2월 뉴질랜드를 떠났고, 현재 아시아 주요국 총영사로 근무 중이다. 당시 외교부는 A씨에 대해 감봉 1개월의 경징계를 내리는 데 그쳤다. 그나마 외교부는 A씨의 징계 사유에 해당 성추행 문제가 포함됐는지조차 설명하지 않고 있다. 성추행이 아니라고 결론내렸다면 정확히 설명해야 했지만, 침묵을 지키며 사실상 의혹을 시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첫발부터 꼬인 데다 처리도 투명하지 못하다 보니 상대 측 주장에 제대로 대응도 못한다. 뉴질랜드 경찰은 “당시 촬영된 CCTV 영상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면책특권을 이유로 한국 정부가 거부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불가침성을 인정받는 공관을 압수수색하는 건 외교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런 점을 들어 외교부 주변에선 뉴질랜드의 주장이 좀 지나치다는 말도 나오지만 결국은 자초한 일이다. CCTV 영상만 하더라도 영장 집행이 아니라 대사관이 자발적으로 제출하는 방법으로 수사에 협조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한국대사관이 성범죄자를 보호한다”는 현지 언론의 비난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안 좋은 일은 쉬쉬하며 덮으려고만 하는 외교부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쇄신할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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