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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진출 1호 화가' 배운성을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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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갤러리 '배운성 전' 개막

연합뉴스

배운성, '화가의 아내', 1938, 캔버스에 유채 , 60x73cm [웅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100년 전에 유럽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현지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하며 명성을 얻은 화가가 있다. 한국인 최초 유럽 유학 화가로 꼽히는 배운성(1900~1978)이다.

1920년대 초 독일로 간 그는 국제적인 작가로 이름을 날렸고, 해방 후에는 홍익대 미술학과 초대 학과장을 지내는 등 한국 미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6·25전쟁 당시 월북해 오랜 세월 한국 미술계에서는 잊힌 존재가 됐다. 1988년 해금됐지만, 국내에서 그의 작품을 보기 어려웠다.

서울 종로구 홍지동 웅갤러리에서 29일 개막한 '배운성 전'은 배운성이 유럽 시절 완성한 작품 48점을 선보인다.

배운성 작품은 불문학자인 전창곤 대전 프랑스문화원장이 프랑스에서 입수해 2001년 국내로 들여왔다.

그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후 '가족도', '화가의 아내', '한국의 어린이', '행렬', '빨래하는 여인들' 등을 비롯한 48점이 한 자리에 다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옥을 배경으로 대가족이 등장하는 '가족도'는 당대 주거와 복식 등을 생생하게 보여줘 등록문화재 제534호로 지정된 작품이다. 서울 갑부였던 백인기 집안사람들을 그렸다고 알려진 작품으로, 그림 가장 왼편에 흰 두루마기를 입고 선 남자가 배운성이다.

다섯살 때 아버지를 여읜 배운성은 경성중학교 급사로 일하며 고달픈 유년기를 보냈다. 열다섯살 때 백인기 집에 서생으로 들어갔다. 1919년 백인기의 아들 백명곤의 일본 유학길에 함께 올랐고, 1922년에는 독일로 갔다.

백명곤이 병으로 귀국했지만, 배운성은 여비가 없어 독일에 남게 됐다. 그는 홀로 독일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해 유명 작가로 성장했다.

레벤푸크 미술학교와 베를린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1927년 살롱 도톤전 입상을 시작으로 파리국제전람회 출품, 와소르 국제미전 1등상 수상, 프라하 국제 목판화전 입상 등으로 인정받는 화가가 된다. 베를린 구틀리트 화랑과 함부르크 박물관 전시회, 프라하 개인전 등을 열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78년 숨을 거둔 그는 북한 미술계에서도 요직을 거쳤으며 특히 판화가로 이름을 떨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장에서 만난 전창곤 대전 프랑스문화원장은 "당시 파리에서 배운성의 작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구열 미술평론가에게 물었더니 대단히 중요한 작품들이라고 했다"라며 "두차례에 걸쳐 그림을 모두 사들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 시대에 배운성처럼 유럽에서 제대로 교육받고 그 시장에서 자리 잡고 활동한 한국 작가가 거의 없다"라며 "배운성은 서양적, 동양적 기법을 아우른 완숙한 작품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국화랑협회장인 최웅철 웅갤러리 대표는 "한국 미술시장에서 근대미술이 몰락해 뛰어난 작가들이 전혀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전시를 계기로 근대미술 조명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같은 건물에 있는 웅갤러리와 본화랑, 미술품투자회사 아트아리가 함께 연다. 8월 29일까지. 입장료 3천원.

연합뉴스

배운성, '빨래하는 여인들', 1930년대, 판넬에 유채, 65x105cm [웅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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