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합의 주장은 정상회담 합의를 성사시킨 대북 특사단에 대한 명예훼손이다.”(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30억 달러 남북경협 이면 합의서(4·8 남북 경제협력 합의서) 서명’ 의혹 공방이 28일에도 계속됐다. 주 원내대표가 이날 “이면 합의서는 전직 고위공무원이 제보한 것”이라고 하자 박 후보자는 “제보자를 밝히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대응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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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3월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박 후보자는 대북 특사로 깜짝 발탁됐다. 북측의 카운터파트인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과 수차례 비밀 접촉을 하고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했다. 같은 해 4월 8일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일정이 담긴 남북 합의서를 체결하고 그 이틀 뒤 언론에 공개했다. 4·13 총선(16대)을 사흘 앞둔 시점이었다. 이어 김 대통령은 6월 13~15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뒤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대북 송금 사건’이 터졌다. 특검팀 수사 결과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현대상선이 5억 달러(현물 5000만 달러 포함)를 북한에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 후보자도 대북송금 과정에 관여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게 현재까지 알려진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전후 과정이었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이 공개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 2000년 4월 8일 작성됐다. [미래통합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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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날 인사청문회에서 박 후보자가 20년 전 남북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북한에 금전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이면합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주 원내대표가 이면 합의서라고 주장하며 공개한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 내용은 이렇다.
“첫째 북측에 2000년 6월부터 3년 동안25억딸라 규모의 투자 및 경제협력차관을 사회 간접부문에 제공한다. 둘째 남측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5억딸라분을 제공한다. 셋째 이와 관련한 실무적 문제들은 차후 협의하기로 하였다.”
문서 아래에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박 후보자의 사인이 있고, 2000년 4월 8일이라는 날짜도 적혀있지만, 박 후보자가 이 문서를 날조된 것이라며 강하게 부정하면서 진실 공방으로 치닫는 중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에 대해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공개된 이면 합의 문건을 보고 ‘설로만 돌던 게 진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대북송금 특검이 끝난 후에도 대북 문제에 정통한 인사들 사이에선 ‘수사를 통해 밝혀진 건 극히 일부일 뿐 실제 북한으로 송금하려고 한 돈의 규모는 훨씬 컸다’는 말이 돌았다”고 전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2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열린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 후보자의 서명이 담긴 문건을 보여주며 질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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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주장도 나왔다. 익명을 원한 한 여권 인사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면 합의를 하고 그걸 문서화해 서명까지 했다는 건 관례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얘기”라며 “특검을 통해 이미 사실관계가 정리된 마당에 왜 이런 주장이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이날 박 후보자가 김대중 청와대 공보수석·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던 당시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사용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종찬 당시 국정원장은 통화에서 “말도 안되는 얘기다. 당시 국정원 자금은 박 후보자는 물론 청와대 누구에게도 가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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