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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이슈 故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실업팀 운동지도자 태반이 男"…故 최숙현 비극 낳은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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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공공기관 女지도자, 남성지도자 '10분의 1' 정도 그쳐

공공기관 운동부 여성지도자는 지난해 기준 1년 만 '반토막'

코치→감독 오를수록 여성 급감…최고 결정권자일수록 수 적어

여성지도자 '고용촉진제' 대안 제시돼…"문체부 관리감독해야"

전문가 "스포츠계 전체 여성비율 포함 '스피커' 늘어나야"

CBS노컷뉴스 이은지·차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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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 가해자 김규봉 전 감독(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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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의 죽음으로 재차 부각된 스포츠계 폭력 사태의 이면에는 남성에 비해 현격히 부족한 '여성지도자' 비율이 배경으로 자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승리와 메달을 위해서 소위 '빠따'와 '기합'이 일상으로 묵인되는 남성 중심적 환경 속에서 여성선수들은 조언을 구할 선배나 고충을 나눌 창구조차 마땅치 않아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을 포함해 전국 실업팀 운동부 지도자 현황을 살펴본 결과, 여성지도자는 남성 지도자의 '10분의 1' 가량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1041 vs 109'…54개 종목 중 24개 여성 지도자 '0'

17일 CBS노컷뉴스가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지자체와 공공기관, 기타 소속을 합산한 실업팀 운동부의 지도자(코치 및 감독)는 총 1150명으로 남성이 1041명(90.52%), 여성이 109명(9.47%)으로 집계됐다.

전체 9할에 달하는 남성지도자가 사실상 선수 지도를 '독식'하고 있는 가운데, 이와 같은 심각한 불균형은 세부항목에서도 같았다.

지난해 지자체 실업팀 운동부 여성지도자는 70명(9.92%)으로 남성지도자(635명·90.07%)의 9분의 1 정도에 머물렀다. 이는 심지어 10%를 간신히 넘겼던 지난 2018년 여성지도자 비율(10.15%)보다도 소폭 낮아진 수치다. 1년 새 남성지도자는 16명(619명→635명)이 늘었지만, 여성지도자는 기존 숫자를 유지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공공기관은 상황이 한층 더 악화됐다. 지난해 공공기관 실업팀 운동부 여성지도자는 고작 4명으로 남성 지도자(41명)의 10%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물론 2018년에 비해 공공기관 실업팀 운동부 지도자 수가 20명 가까이 줄어드는 등 고용상황 자체가 좋지 않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남성지도자 수는 약 25% 감소한 반면, 여성지도자 수는 약 60%가 줄어들었다.

종목별로 살펴보면, 검도·배구·빙상·철인 3종 등 총 54개의 종목 가운데 여성지도자가 아예 없는 경우도 24개(44.44%)에 이른다. 구체적으로는 축구, 우슈, 요트, 야구, 씨름, 승마, 스키, 스쿼시, 세팍타크로, 산악, 빙상, 봅슬레이스켈레톤, 복싱, 보디빌딩, 바이애슬론, 루지, 럭비, 댄스스포츠, 당구, 검도, 궁도, 근대5종 등이다.

여성지도자가 남성보다 더 많은 '희귀' 종목은 바둑(여성 4명·남성 2명)과 에어로빅(여성 1명·남성 0명)이 유이했다.

◇'남성 일변도' 체육계, 反여성적 폭력으로…37% vs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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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희 선수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조재범 전 코치'(사진=박종민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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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조재범 코치 사건' 이후 지난해 2월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을 꾸린 국가인권위원회의 실업팀 운동부 실태조사도 다르지 않았다. '남성 일변도'인 체육계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남성들은 팀의 목표와 전반적 훈련 등을 책임지는 '인사 결정권자'로 갈수록 그 수가 많아졌지만, 여성들은 정반대 양상을 보였다. 남성지도자는 실업팀 운동부 코치(881명·70.4%)보다 감독(1129명·90.2%)이 훨씬 더 많았지만, 여성지도자의 경우 코치가 13.2%(165명)인 데 반해 감독은 6.1%(76명)를 기록해 절반 이하로 내려앉았다.

지도자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운동부 생활에서 여성선수들은 남성선수들에게 없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하나 더 존재하는 셈이다. 생리와 임신, 출산과 육아 등 성별의 차이로 발생하는 불가피한 생애주기의 사건들도 여성들에겐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유로 작용하는 반(反)인권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성희롱을 비롯한 성차별적 언행, 성폭력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그림자다. 한 실업팀 운동부 여성선수 A(39)씨는 지난해 인권위와의 인터뷰에서 "전 감독에게 별의별 말을 다 들었다. 시합 끝나고 카메라가 집중됐을 때 감독한테 뛰어와 두 팔 벌려 가슴으로 안기지 않았다고 화가 난 것"이라며 "어떤 (남성) 지도자 분들은 아시안 게임 당시에도 고등학생 여자선수에게 술 마실 때 무릎 위에 앉아보라고 하더라. 그게 범법행위고, 여자선수들한테 인권침해라는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직장 운동부에서 성희롱 피해를 입은 선수는 여성이 37%(616명 중 228명)로 12.7%인 남성(635명 중 81명)보다 3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성폭력을 당한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을 요청했다'고 응답한 여성선수는 전체 피해자(104명)의 5.8%(6명)에 불과했다. 특히 피해사실을 알린 대상은 주로 가족과 동료선수, 친구였고 감독·코치 등 지도자는 '1명'밖에 없었다.

◇"여성지도자 고용촉진제 도입해야"…"비율 향상은 '첫걸음'일뿐"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여성지도자 고용촉진제'를 제시했다. 여성지도자의 모집단 자체가 현저히 적은 상태에서 여성지도자 의무고용제 등을 요구하기에는 현실과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중앙대 스포츠학과 허정훈 교수는 "여성지도자들이 도처에 있다면, 운동계에 여성친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돼 여성선수로서의 고충이나 고민을 충분히 털어놓고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같은 여성으로서 이해의 폭도 넓고, 민감한 성 문제 등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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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의 박미희 감독은 부임 이후 탁월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사진=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제공)


그러면서 "현재처럼 여성들이 결혼과 임신이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암암리에 은퇴 또는 퇴직을 강요당하는 환경에서는 '여성지도자'로 성장해가는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며 "먼저 고용촉진제를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이후에 여성지도자 할당제까지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물론 관리감독 주체인 문체부 차원에서의 모니터링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젊은빙상인연맹 여준형 대표는 "여성선수 숫자에 비해 여성지도자 숫자는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체육계가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여성 지도자에 대한 믿음 내지는 지도능력에 대해서도 불신하는 기류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비롯해 여성 선수들의 애로사항 등을 여성 지도자들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며 "그 일환으로 고용촉진제가 필요하지 않나, 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여성지도자 비율 향상이 능사는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스포츠인권연구소 함은주 연구원은 "단지 여성지도자 수만 늘어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스포츠계에 여성 전체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스피커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여성이 많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함 연구원은 이어 "지금 같은 (폐쇄적, 남성중심적) 구조에 여성 지도자가 한두 명이 더 들어간다고 문제는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지도자를 선발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이 대다수 남성이면, 여성지도자가 더 남성화될 우려도 있다"며 "전체적으로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여성'지도자' 비율이 높아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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