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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미국 흑인 사망

英 '문제적'작가 마크 퀸, 노예 무역상 동상 자리에 흑인여성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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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허락없이 게릴라 식으로

작가 "논쟁에 불붙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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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흑인 노예 무역상 동상이 철거된 에 설치된 흑인 여성의 동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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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퀸이 제작한 흑인 여성 젠 리드의 동상. 3D 스캐닝 기술을 활용해 레진으로 제작됐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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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영국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 과정에서 철거된 17세기 노예 무역상 동상 자리에 흑인 여성 동상이 세워졌다. 동상 설치는 시 당국 허가 없이 새벽에 게릴라 식으로 이뤄졌다.

영국 BBC와 가디언 등에 따르면 15일 오전 4시 30분 영국 남서부 브리스틀의 중심가 에드워드 콜스턴 동상이 있던 자리에 흑인 여성의 동상이 기습적으로 설치됐다. 동상은 현대 흑인 여성이 당당하게 선 자세로 구호를 외치는 자세로 오른팔을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다. 동상의 제목은 '솟구치는 힘(A Surge of Power)'다.

이 작품을 만든 이는 대담하고 기발한 발상으로 작품을 만들 때마다 센세이션을 일으켜온 아티스트 마크 퀸(Marc Quinn·56), 모델이 된 흑인 여성은 지난달 6월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에 나섰던 젠 리드(Jen Rei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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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 동상의 실제 모델 젠 리드.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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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동상이 설치된 현장에 리드와 함께 나타난 마크 퀸은 "인스타그램에서 시위 현장의 리드 사진을 보았을 때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내가 본 사진은 리드의 실루엣이었으며 그것은 이미 동상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퀸은 이어 "최근에 나는 3D 스캐닝 기술을 이용해 난민들의 초상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 동상을 만드는데 그 기술을 썼다"고 덧붙였다.

인스타그램 사진은 브리스톨의 회색빛 하늘 배경으로 선 리드의 윤곽이 보이며 기단 주변에 시위 구호가 적힌 피켓들이 흩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중 한 표지판에는 "악에 항의하지 않고 악을 받아들이는 자는 악과 협력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백인의 침묵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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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퀸이 제작해 기습 설치한 흑인 여성 동상.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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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큰 퀸이 이렇게 나선 이유는 뭘까. 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흑인 최초의 주교이자 남아공 출신의 인권운동가인 데스몬드 투투의 말을 인용해 "불의한 상황에서 중립적이라면 압제자의 편을 선택한 것"이라며 "백인들이 목소리를 높여 흑인들이 대우받는 방식, 사회에서 그들의 위상 변화를 지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많은 듣고 배워온 이야기 중에 내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백인의 침묵은 폭력이다'는 말이었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문제는 당국의 허락없이 동상이 설치됐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일종의 '아트 아나키즘'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퀸은 "이 프로젝트를 이끈 가장 큰 동기는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논쟁을 하도록 자극하는 것이었다"며 "시 당국을 포함해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계의 이단아" 마크 퀸



마크 퀸이 기단 위에 동상을 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 앞에 기단 위에 선보인 '임신한 앨리슨 래퍼'의 동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래퍼는 팔은 없고 다리도 기형인 구족화가로, 퀸은 임신한 그녀의 모습을 고대 비너스 조각상처럼 새하얀 대리석 조각으로 선보인 것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제작되고 전시됐던 이 작품에 대해 퀸은 "공공 영역에 작품이 놓이는 것은 누구나 친근하게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며 "미술관은 엘리트 등 소수를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는 데 반해 이 작품은 모두에게 보일 수 있었으며 영국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고 돌이켰다.

앞서 그는 1991년 자신의 피를 냉동시켜 만든 자신의 두상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제목이 '셀프(Self)인 이 작품은 5개월간 몇 차례에 걸쳐 뽑은 자신의 피로 제작했으며, 이후에도 그는 5년에 한 번씩 '셀프' 연작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냉동장치에 넣어져 보관·전시해야 하는 것으로, 이 연작의 세 번째 작품이 국내의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에도 소장돼 있다. 이밖에 첫아들 태반으로 아이의 두상을 만든 'Lucas 2001'로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삶과 죽음, 생명과 아름다움, 인간의 고귀한 정신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탐구하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마크 퀸은 데미안 허스트와 더불어 yBa(young British artists)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지만 yBa의 핵심 멤버들이 다녔던 골드스미스대학 출신이 아니라 캠브리지 로빈슨 칼리지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콜스턴 동상은 박물관으로



지난 5월 미국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영국에서도 대규모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열렸으며, 시위대는 지난달 7일 브리스틀에서 콜스턴 동상을 밧줄로 끌어내린 뒤 강에 빠뜨렸다.

17세기 브리스톨의 '오열 아프리칸 컴퍼니'라는 무역회사의 임원이었었던 콜스턴은 과거 흑인노예와 아동 등 총 8만여 명을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팔아넘겨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1721년 사망한 그는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했으며, 이에 따라 브리스틀 곳곳에는 콜스턴의 기부로 세워진 도로, 건물, 기념관 등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1895년 세워진 콜스턴의 동상은 그동안 브리스틀 지역에 존치 여부를 두고 계속 논란이 있었다.

한편 마빈 리스 브리스틀 시장은 "리드의 동상이 당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설치됐다"며 "콜스턴 동상을 무엇으로 대체할지는 시민들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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