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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사설]사원 혐한교육 벌여온 일본 기업, 우려되는 일본의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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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본의 버젓한 중견기업이 사내에 장기간 혐한 문서를 배포하는가 하면 우익 교과서가 채택되도록 사원들을 동원한 사실이 현지 법원의 판결로 드러났다. 부동산회사이자 상장기업인 후지주택은 2013~2015년 임직원들에게 한국, 중국을 비난하는 문서 등을 배포해왔다. 문서에는 한국인을 ‘야생동물’에 비유하는 유튜브 댓글이나 “한국의 교활함과 비열함, 거짓말 행태는 세계에서도 유례없다”는 등의 혐한 글들이 실려 있다. 또 한·일 갈등에 대해 “그들의 목적은 배상금이며, 역사를 날조하면서까지 상대가 사죄하게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일본군 위안부들이 위안소에 자발적으로 들어와 호화생활을 했다고도 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옹호와 난징대학살을 부인하는 우익사관도 문서로 공유됐다.

후지주택은 ‘사내 교육’뿐 아니라 우익 역사교과서 채택을 돕기 위한 설문조사 조작에 사원들을 동원했다. 회사 측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종업원 인격 교육의 하나”라고 강변했다. 민간기업이 사원들을 배외주의 캠페인에 동원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일본 사회에서 이런 퇴행적인 일이 벌어졌다니 경악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후지주택 사례는 이 회사 비정규 직원인 재일한국인 여성이 5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오사카 지방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그간 이 여성이 겪었을 고통은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렵다. ‘혐한 기업’은 후지주택만이 아닐 것이다. 한 호텔체인도 극우 성향의 최고경영자가 일본군 위안부와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서적들을 호텔 객실 내에 비치하고 프런트에서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또 어떤 기업이 혐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을지 모른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난 12일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일본 사회의 배타주의에 대해 “간토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처럼 사람들이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세태의 흐름을 예민하게 읽어온 작가가 일본 사회의 오작동과 폭주 가능성에 경고음을 낸 것이다. 하루키나 후지주택의 부당행위에 맞선 재일한국인 여성처럼 양심과 용기를 지닌 시민, 그리고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담하다. 이런 시민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연대하고 응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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