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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ET단상]질 좋은 특허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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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이준석 위더피플 대표변리사


이제 특허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동안 특허에 대한 산업계 인식이 상당히 높아져서 우리도 특허 양에서는 세계 수준이 됐다. 그러나 사실 질 좋은 특허가 그리 많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말해 주듯 세계무대에서 특허로 매년 떼돈 번다는 소식은 접하기 어렵다. 여전히 선진국의 특허 공세에 취약한 모습도 보인다. 기술무역수지도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왜 특허는 많은데 돈 버는 좋은 특허는 많지 않은가. 좋은 기술을 개발하면 좋은 특허는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좋은 기술은 좋은 특허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절대 아니다. 기술 개발에 상응하는 좋은 특허 만들기 과정이 전략 차원에서 담보돼야 한다.

우선 개발된 기술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발명자와의 충분한 의견 교환이 필요하다. 이를 기초로 기술 개발 배경과 효용성, 실시 사례 등을 풍부하게 특허 서류에 반영해야 한다. 특히 가장 중요한 업무가 권리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앞선 기술과 차별화되면서도 향후 시장에서 강하면서 활용 가치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보호받고자 하는 기술 내용을 특허법에 맞게 풀어 써야 한다. 문장 구조와 용어 선택 하나하나에 공을 들여야 한다. 결국 좋은 특허 만들기의 성패는 전문성과 투입되는 시간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특허를 마치 집 다 짓고 등기하는 업무처럼 단순히 부수 업무 정도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정작 최고경영층의 관심을 끌 만한 중요 업무가 아니다. 전략이 아닌 관리로,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취급된다.

이처럼 특허 업무에 대한 이해 부족과 경시 풍조는 일 잘하는 전문가보다 큰 실수 없이 일하고 비용 적게 청구하는 전문가를 선호하게 만든다. 국내 특허 업무 수수료가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투입하기 어렵다. 당연히 질 좋은 특허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여기에 특허전문가 간 과열 경쟁과 이를 부추기는 행태가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한다. 경쟁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특허 시장에서의 경쟁이 전문성과 실력에 의한 경쟁이 아니라 저가 경쟁 양상으로 나타나 문제다. 특허전문가가 전문성을 쌓기보다는 사건 수임을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최근엔 많은 특허전문가가 정부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특허 등록 성사금을 받으려고 특허 받기 쉽게 권리 범위를 좁혀서 특허 출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가 들려 온다. 기업의 소중한 기술이 휴지 조각으로 되는 순간이다. 저가 경쟁의 최종 피해자는 다름 아닌 우리 기업이다.

특허 시장에서 경쟁은 저가 경쟁이 아닌 전문성 경쟁이어야 한다. 기업이 그동안 좋은 기술 개발에 많은 공을 들여왔듯이 이제는 좋은 특허를 만드는 데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전략을 세워서 좋은 전문가를 활용해 용어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고 투자하듯 기꺼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전문성으로 경쟁하도록 여건을 만들어서 특허전문가가 세계 최고의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특허전문가도 세계 최고 기업, 세계 최고 특허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발휘해서 전문성으로 경쟁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기대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도 좋은 특허만으로도 매년 수십억달러를 벌어들이는 IBM이나 퀄컴 같은 기업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이준석 특허법인 위더피플 대표변리사 leejs@wethepeop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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