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 주 인민은행 관료는 중국이 자국 통화인 위안화와 다른 통화 간 직거래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에도 위안화 직거래는 부분적으로 도입된 바 있으나 인민은행은 '위안화 기축통화 만들기'의 일환으로 직거래 확대를 통해 '달러화 패권'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축 통화란 미국 달러화 처럼 국제 무역·금융 거래 결제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기본 통화를 말한다. 기존 직거래의 경우 지난 2014년 12월 서울에서 원/위안 직거래 시장이 만들어졌고 다른 주요 지역으로는 중화권인 홍콩·싱가포르, 홍콩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영국 런던에 위안화 직거래 시장이 개설돼있다.
코로나19 사태 속 내수 재건에 힘써야 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직거래 시스템을 들먹이며 위안화 기축통화 만들기에 나선 이유는 미국 제재가 현실화 될 것이라는 위기감 탓이다. 이 때문에 지난 달 22일 팡 싱하이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 부위원장은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 주최 행사에 참석해 "중국은 국제 거래에서 미국 달러 지불 시스템에 의존하기 때문에 미국의 제재에 취약하다"면서 "러시아가 2014년 이후로 미국 제재를 받은 앞선 사례를 보면 중국도 미국 제재에 대비해 심리적인 대비 뿐아니라 실제적인 대비를 해야한다"고 위기감을 강조하고 나섰다.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을 지낸 경제학자 위용딩도 "중국은 미국의 금융 제재라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제재에 따라 중국의 금융 자산이 동결 될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기 때문에 규제 당국이 비상 계획을 마련했을 것이라고 본다"고 언급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이밖에 또 다른 전직 고위 관료는 "달러 헤게모니는 백인이 중국을 괴롭히는 주요 수단이자 위험 요소"라는 비난을 하는 등 최근 한 달새 중국 금융 당국자들의 언행이 심상치 않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미국발 금융 제재에 대한 중국의 위기감을 끌어당긴 가장 최근 사건은 홍콩보안법이다. 중국이 지난 달 홍콩보안법을 통과시켜 이달 1일부로 강행에 나서자 미국에서는 홍콩에 대한 무역·비자 등 특혜를 폐지하는 방안과 '홍콩달러 페그제'에 타격을 주는 방안 등 다양한 제재 수단을 검토해왔다.
홍콩달러 페그제를 약화시키는 방안은 미국 백악관 참모진들의 아이디어로 홍콩 은행들의 달러 매입을 제한하는 것이다. 페그제는 일종의 고정 환율제로 홍콩달러 환율을 1미국달러 당 7.75~7.85홍콩달러로 가치를 고정시키는 식이다. 홍콩에는 중앙은행이 따로 없고 금융관리국(HKMA) 감독 하에 HSBC와 스탠더드차터드(SC), 중국은행 등 시중은행이 미국 달러를 사들이거나 되팔면서 홍콩달러 가치를 유지해왔는데 미국이 이들의 달러화 거래를 제재하는 경우 홍콩달러 환율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특히 중국이 의식하는 것은 미국의 '대(對) 러시아식 금융 제재'다. 러시아가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로 합병하자 미국은 이에 대해 러시아 석유·군사 분야 외 금융 분야 제재를 취했고 유럽연합(EU)도 동참해왔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련된 러시아 주요 인사들에 대한 여행 금지 ·자산동결 등을 시작으로 지난 2018년 4월에는 러시아 정부 관료와 신흥재벌, 관련 12개 기업에 대해 '미국 내 자산 동결·미국인이나 미국 기업과의 거래 금지'등을 단행해 러시아 정권 자금줄 차단에 나선 바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이 당장 중국에 대해 고강도 금융 제재를 내릴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중국으로서는 대비를 서두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역외 채권·부채가 1조 달러에 달하고 국영기업 부채도 1.1조 달러에 달하는 데다 중국 기업들에게 달러는 생명줄과 같기 때문에 자산·부채와 무역 관련 거래가 동결되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에서다.
게다가 당장 국제 사회에서 위안화의 입지가 좁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1분기(1~3분기)를 기준으로 낸 전 세계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화 비중 통계를 보면 외화 보유비중 1위가 미국 달러화(62.0%), 2위는 유로화(20.1%), 3위는 일본 엔화(5.7%), 4위는 영국 파운드화(4.4%)다. 위안화 비중은 2.0%에 그친다. 중국이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과 더불어 주요2국(G2)로 통하지만 시장 규모에 비해 위안화 영향력은 상당히 낮다.
중국은 일단 내부적으로 '통화 벽 허물기'에 나섰다. 홍콩보안법 시행을 이틀 앞둔 지난 달 29일 인민은행과 홍콩·마카오 금융관리국은 홍콩과 마카오, 중국 남부 지역을 대상으로 금융 투자를 허용했다. 당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광둥성 도시 9곳과 홍콩, 마카오를 하나로 묶는 웨강아오다완취 지역에서 금융투자 상품을 서로 거래할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홍콩은 홍콩달러, 마카오는 파타카(MOP), 본토인 광둥성은 위안화를 사용한다. 중국은 당국이 자본 거래를 엄격히 통제하지만 홍콩과 마카오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다만 중국의 위안화 기축통화 만들기는 코로나19사태를 감안하면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국 통화를 기축통화로 만들려면 빠른 경제회복을 통한 글로벌 시장 영향력 확대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경제 회복과 중국에 힘입은 글로벌경제 회복세가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전했다.
WSJ는 2008~2009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소비 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서 막대한 원자재 등 수요자로 위치를 굳혔지만 코로나19사태 이후로는 '경제 재개 선언'에도 불구하고 대외 움직임이 10년 전 움직임에 못미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금융위기가 닥친 2018년 중국은 자국 경제 규모의 13%에 달하는 5860억 달러 규모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같은 해 중국 경제가 9.7%, 이듬 해 9.4% 성장했다. 당시 중국은 브라질과 호주를 비롯한 산유국으로부터 철광석과 석유 등 다양한 원자재를 사들이고, 독일과 한국으로부터 기계나 반도체 장비를 구매하는 식으로 글로벌 경제 회복세를 끌어당겼다.
다만 올해 들어선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이 경제 재개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 체감도는 낮다. WSJ는 한국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영진IND를 인용해 "중국 측 주문이 2~3월에 뚝 끊겼다가 최근 들어왔지만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하면 3분의 1수준"이라면서 "중국의 자국 산업 육성 전략과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재유행 가능성을 감안하면 중국의 글로벌 시장 영향력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줄어들 수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오는 16일에 2분기 국내총생산(GDP)을 발표한다. 시장에서는 중국 2분기 GDP가 지난 해 같은 기간 대비 2.4%늘어나 올해 1분기(-6.8%)보다는 나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코로나19 타격 탓에 앞서 중국 정부는 올해 성장률 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3.0%라는 '필요 성장률'만 제시한 상태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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