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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시선]차별 없는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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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화 <히든 피겨스>는 냉전 시기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실제 일했던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로켓의 궤도를 계산했던 천재 수학자 캐서린 존슨, 초기 컴퓨터인 IBM7090을 다루었던 프로그래머 도로시 본, 발사체를 직접 만들던 엔지니어 메리 잭슨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이 있었지만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차별을 경험한다.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유색인종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고, 여자라는 이유로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으며, 식사도 백인들과 분리된 식당에서 해야 했고, 심지어 사무실 커피포트를 함께 사용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경향신문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냉전 시기 미국은 소련과 우주개발 경쟁을 했는데, 늘 한 걸음씩 늦었다. 미국은 최초의 유인 우주선은 소련보다 먼저 성공하겠다며 총력을 기울였지만, 1961년 4월12일 소련이 우주선 보스토크에 우주비행사 가가린을 태우고 약 108분 동안의 최초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하면서 또다시 체면을 구겼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NASA의 연구실에서 캐서린 존슨은 자리를 오래 비우는 경우가 많았다. 화장실에 가려면 왕복 2㎞를 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알게 된 본부장은 직접 쇠파이프로 ‘유색인종 화장실’ 팻말을 부순 뒤 말한다. “NASA에 더 이상 흑인 화장실은 없다. 우린 모두 같은 색 오줌을 눈다.” 건물에 ‘유색인종 화장실’을 더 만들지 않고, 차별적인 화장실을 부숴버리는 과감한 한 방이 NASA를 하나의 팀으로 만들었고 얼마 뒤 미국은 첫 유인 우주선 머큐리호 발사에 성공한다. 영화는 부당한 차별이 그동안 가로막고 있었던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와 힘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코로나19 이후 인종차별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계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많은 국민이 해외에서 일어난 인종차별에 분노했다. 고무적인 일이다. 거기서 멈추지 말고 시선을 우리 사회로 돌려보아야 한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220만명의 외국인, 그리고 한국 국적을 가진 다양한 인종의 국민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어떠한가. 코로나19 초기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문구를 내건 식당도 있었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하철에서 쫓겨나거나 심지어 물리적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차별을 용인하는 사회에서 소수자는 늘 손쉽게 혐오와 배제의 희생양이 된다. 눈에 보이진 않아도 사회에 누적된 차별과 혐오는 결국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우리나라는 아직 인종차별을 규제하는 제도가 없다. 1979년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하였지만 구체적인 이행입법을 만들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외국인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외국인과 다문화가족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을 인종차별로부터 보호해야 할 구체적 필요가 있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의 제정을 국회에 제안했다. 이번 평등법은 인종 또는 출신국가를 이유로 한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더 다양해질 것이다. 다양한 구성원이 평등한 인간으로 존중되고 차별받지 않을 때, 혐오와 배제가 아닌 다양성과 공존이라는 미래 가치가 생겨날 것이다. 이번 21대 국회에서 평등법이 꼭 통과되기를 희망한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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