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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지금, 여기]농촌 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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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첫 책을 낸 출판사는 ‘망원 우체국’ 정류장 인근이다. 망원 우체국에서 책을 보내며 가까운 이들에게 ‘우정’을 표시했다. 그날 번호대기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며 얼마나 설렜던지. 망원 우체국은 그토록 내게 좋은 추억의 장소이건만 경영효율화 정책에 따라 지난 4월 적자를 이유로 문을 닫았다. 대신 그 자리엔 프랜차이즈 치킨점이 들어섰다. 관공서로만 알고 있던 우체국에 적자와 흑자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우정사업본부는 국가 예산을 지칭하는 일반회계가 아닌 자체 수입으로 지출하는 특별회계에 편성되어 있어 사업을 잘해서 수익을 내야 하는 조직이었던 것이다.

경향신문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우표를 붙인 손편지를 부칠 일도 거의 없고 각종 고지서도 전자문서로 받는 시대다. 그리고 소포는 사기업 택배 회사를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업체로서의 우체국은 현실적으로 경쟁력이 없다. 하지만 시민들이 알고 있는 우체국은 편지와 소포만 보내는 곳이 아니라 저축도 하고 공과금도 낼 수 있는 금융기관이기도 하다. ‘우체국보험’을 취급하는 창구이자, 심지어 알뜰폰 가입업무도 수행한다. 분쟁이 생겼을 때 법적 증거로 남겨두는 ‘내용증명’ 업무도 우체국에서 한다. 게다가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는 공적마스크 판매와 재난지원금 지급 창구 역할도 했다. 그래서 우체국은 시민의 심복이자 관공서로 알고 있었다.

농촌에서 우체국은 더없이 귀한 관공서다. 초고속 인터넷 시대와는 별개로 느릿느릿 흘러가는 농촌에서 집배원은 행정의 많은 부분을 담당한다. 공과금을 내러 면 소재지까지 나갈 수 없을 때 대신 공과금을 내주기도 하고 심지어 생필품을 대신 사다주는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이 ‘시골 집배원’들이다. 무엇보다 농촌 택배, 즉 소량의 신선 농산물을 택배로 보낼 때는 우체국만 받아준다. 규격에도 맞지 않고 물량이 많지 않으면 사설 택배업체에서는 받아주지도 않기 때문에 농촌에서 우체국은 꼭 있어야 한다.

하지만 농어촌 지역의 우체국 대부분은 ‘망원 우체국’보다 더 취약한 위탁 우체국인 ‘별정우체국’이다. 우체국은 직영 우체국과 민간에 운영을 맡긴 위탁 우체국으로 나뉜다. 별정우체국의 경우 전국에 725개소이고 그중 95%가 읍·면 지역에 있다. 농어촌 우체국은 대체로 별정우체국이 더 많다고 보면 맞다. 별정우체국은 청사와 시설은 민간에서 부담하고 체신 업무를 국가로부터 위임받아 수행하며 정부는 인건비와 운영비를 지원하는 형태다. 별정우체국의 업무도 직영 우체국과 같아 시민들은 우체국으로만 알고 있다.

별정우체국은 국가 예산이 부족해 벽지까지 우편 서비스가 닿지 않던 때, 1961년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만든 제도다. 국장 지위 승계가 가능해 ‘우체국장 아들’이 다시 그 우체국의 국장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승계제도가 현대판 음서제 아니냐며 별정우체국 폐국의 명분으로 삼기도 하지만 국가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다가 이제는 그 부분만 문제 삼는 것도 구차하다. 부정비리가 있다면 사안에 따라 단죄하면 될 일이다.

적자로 인해 고민이 많은 우정사업본부의 경영합리화 조치로 제일 먼저 손을 대려는 곳도 결국 별정우체국이다. 경영합리화 조치에는 효율화를 명분으로 인력을 감축하는 카드를 먼저 꺼내들었다. 농촌의 별정우체국을 2인체제로 운영하라는 건데 이는 결국 폐국을 하란 뜻이다.

이미 농촌의 별정우체국에는 두 사람만 근무하는 곳이 많아 몸이 아파도 병가를 내기조차 어렵다. 농촌은 담당 권역이 넓어서 업무 강도가 상상을 넘어서고 많은 농촌 집배원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었다.

오히려 사람이 더 필요한 곳이 농촌 우체국이다. 농촌에는 오래전에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사라졌고, 유치원과 학교가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우체국 차례인가.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겠다면서 도대체 어디를 믿고 돌아오라는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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