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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양승훈의 공론공작소]서울에 대한 욕망, 도덕적 결벽으로 해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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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은 글로벌 도시다. 청와대와 국회라는 정치의 중심이 있다. 여의도부터 종로까지 금융산업과 언론이 넓게 펼쳐져 있다. IT 산업과 첨단 제조업도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인 서울 주요 대학’이 있다. 인적 네트워크가 집중되어 있는 서울에 살아야 ‘정보’에 밝아진다는 말도 사실이다. SK하이닉스는 인재 확보 때문에 공장마저 수도권으로 진입시켰다. 젊은 고학력 고소득자들의 서울 선호는 보편적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은 가장 고학력의 다양성을 가진 인구가 몰려 있는 창조 도시다. 퀴어퍼레이드, 촛불시민과 태극기부대가 충돌사태 없이 집회를 마칠 수 있는 곳이다. 서울 선호의 욕망은 별난 게 아니다.

경향신문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신도시 건설로 대표되는 교외화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직장인들은 30분 이내로 서울 직장에 통근이 가능한 직주근접을 바란다. 그린벨트보다 아파트단지 공원이 더 좋다며 규제를 풀어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폭탄’을 떨어뜨리라는 사람도 많다. 교외화든, 공급 확대든 ‘서울권’ 확장 프로젝트가 된다. 수도권의 인구는 전국의 절반을 넘겼다.

정부가 허깨비랑 싸우는 것 같다. 강남 아파트를 비롯, 서울 아파트 값을 잡겠다며 3년째 결연한 승부를 치르고 있다. 유동성 공급을 극대화하는 경기 침체 상황에서도 부동산 가격만큼은 잡겠단다. 노무현 정부 때 ‘버블 세븐’으로 대표되던 규제지역은 이제 수도권 전체로 확대되었다. 대출 규제는 LTV 70%에서 40%까지 강화됐다. 다주택자 보유세 인상과 개인임대사업자 혜택 축소까지 꺼냈다. 레버리지 동원이 막힌 수도권의 30대 수요자들은 다주택자는 한 채만 남기고 팔라고 한 여당과 청와대의 권고 앞에서 강남 아파트를 가진 주로 ‘86세대’ 고위공직자들이 우왕좌왕하는 행태에 조소를 보낸다. 재산을 지키려는 생활인의 태도와 결연한 선한 의지와 옳음에 기댄 정치 행위는 모순되는 게 자연스럽다. 모순이 없다고 우길 뿐이다.

30대들은 부모의 지원으로 자본을 쌓아 서울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을 보며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말을 한다. ‘영끌 해서’(영혼까지 끌어다가) 서울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말이 단체 채팅방에 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30대의 2년간 주택담보대출액은 102조7000억원으로 전체의 35.7%에 달한다. ‘똘똘한 한 채’가 확실하다는 걸 깨달은 지방 고액자산가까지 서울 아파트게임에 끼려고 참여 중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는 제자리걸음이다. 지역 언론에서는 ‘과열’이 아니라 ‘침체’가 화두다. 정부의 결연한 규제정책이 ‘희소재’로서의 서울 아파트만 재인식시키는 셈이다.

서울에 대한 욕망을 투기꾼들이 조장했다고 전제하는 것부터 틀렸다. 수많은 사람이 서울을 원한다. 서울 집값을 규제를 통해 관리할 수 있다고 본 것도 틀렸다. 정부대책이 나올 때마다 업계에서 ‘파훼법’이 나온다. ‘정보력’이 떨어지는 사람만 손해 본다.

정치·경제·교육의 중심 ‘서울’
서울 선호 욕망은 별난 게 아냐
‘똘똘한 한 채’ 떠들썩할수록
지역균형발전 의제는 잠식되어 가
‘사는 것’ 아닌 ‘사는 곳’ 개선해야

정부는 시장 메커니즘보다 더 효과적인 대책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서울 아파트값의 급등만큼 폭락도 정책 당국이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처음부터 서울 아파트를 희소한 재화로 만드는 규제정책이,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고 고액 자산이 있으면 종부세 등 보유세를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규칙을 지키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어 보인다. 과열된 시장 때문에 LTV 비율을 환원할 수도 없고, 더 쓸 수 있는 규제 수단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바야흐로 3기 신도시 등 물량 확대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물량이 확대되고 다주택자에게 세금을 높이고 혜택을 축소하면 서울 집값이 잡힐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노후 아파트 재건축 시장이 열려 시장이 들썩일 때는 무엇을 할 건가?

주택정책으로 ‘사는 곳’을 개선할 수 있는데, ‘사는 것’으로서의 가격을 이기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선한 의지에 기댄 도덕적 정당성을 입증하려 정책을 펼치니 결벽과 강박의 늪에 스스로 빠지기 일쑤다.

그사이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자원과 의제는 잠식되어 간다. 광역경제권을 어떻게 설계하고 지방 소멸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여성과 청년들을 살게 할 지방의 인프라를 어떻게 조성할지, 50조원 예산의 도시재생을 투전판에서 거리를 두고 어떻게 자리 잡히게 할지. 혁신도시 가족동반정착률은 어떻게 높이고, 저출생의 도전은 어떻게 풀지. 서울에 대한 욕망을 단순히 나쁜 것으로 간주하니 딜레마를 풀 수 없다.

강남 집값이 오른다고 한국인 주거의 질에 문제가 생길까. 국민 주거의 질을 정부가 보편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원칙에 집중했으면 한다. 틈새를 만드는 핀포인트 규제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책을 효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서울에 대한 수요를 전환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일이다. 외고집을 버리고 수도권과 세종의 청사에서 나와, 현장에 내려가서 좀 듣고 봤으면 좋겠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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