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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인공지능이 만드는 메아리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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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한 AI 콘텐트 추천 시스템

접근 가능한 정보 줄일 수 있어

메아리의 방, 편협된 사고 조장

추천 다양성 보장위해 노력해야

중앙일보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맞춤형 콘텐트’가 대세다. 인공지능은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 내가 살 만한 제품, 내 관심사에 맞는 기사, 내가 클릭할 법한 동영상을 추천해 보여준다. 인터넷에는 워낙 많은 자료가 올라와 있다 보니, 개인의 선호에 맞는 콘텐트를 잘 선별하여 보여주어야 관심을 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을까?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는 핵심 화두이다. 넷플릭스는 자사의 영화 추천 기술을 10% 향상하는 팀에게 1백만 달러를 지급하는 경진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경진대회 덕분에 개발된 뛰어난 영화 추천 기술은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로 손꼽힌다.

추천 시스템을 구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이용자의 특성을 분석해서 그에 맞는 콘텐트를 보여주는 것이다. 가령 뉴스 사이트에서는 어디에 거주하는 특정 연령대 사람이 좋아할 법한 기사를 추천해 주는 것이다. 언뜻 좋은 방법처럼 보이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일일이 콘텐트를 분류하고, 누가 이러한 콘텐트를 좋아할 것인지 미리 정해 두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방법을 많이 쓴다. 내가 구매한 물건과 같은 물건을 구매한 다른 이용자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추천해 주는 것이 대표적 예다. 이용자 개인의 인적 사항을 모르더라도, 행동 패턴을 통해 선호를 알아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용자의 행위 데이터가 더 많이 축적될수록 추천 시스템의 성능이 향상된다. 더 많은 이용자 데이터가 있으면 나와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이용자를 찾아낼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다들 데이터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중앙일보

인공지능 개척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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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시스템은 온라인 시장에서 고객을 붙잡아 두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아는 한 미국 교수는 항상 아마존에서 책을 산다. 종종 오프라인 서점에 들르기도 하지만, 책 주문은 꼭 아마존 사이트에서 한다. 아마존의 책 가격이 싸서 그런 게 아니라, 아마존의 추천 시스템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아마존이 내가 이 책을 샀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비슷한 책을 추천해 줄 수 있다. 한 사이트에 내 정보가 쌓이고 나면, 다른 사이트로 옮겨 가기 어렵게 된다. 고객에 대한 잠금(lock-in)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정보가 넘쳐나게 쌓이면서 개인의 관심사에 맞는 콘텐트를 선별하는 일이 필수적으로 되었다. 하지만 추천 시스템이 과다하게 활용되면 접하는 정보의 다양성이 줄어들 수 있다. 이제까지 본 영화와 비슷한 영화들만 주로 추천된다면 새로운 영화를 접할 기회가 줄어든다. 추천 시스템이 민주주의 영역에 활용되면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내가 특정 주제의 기사를 주로 읽었다고 해서 비슷한 기사만 보여준다면 여러 견해를 비교할 기회를 잃게 된다. 최근 인터넷 동영상이 중요한 정보 접근 경로가 되고 있다. 개인 맞춤형 추천 동영상을 연이어 재생하다 보면, 세상에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잊게 될 수 있다. 더 무서운 것은 다른 생각들을 놓치고 있다는 점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채, 현재 접하고 있는 콘텐트가 세상 전부인 것 같은 착시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점차 모이게 되고, 다른 생각을 접할 기회를 잃어가는 현상을 ‘메아리의 방(echo chamber)’ 효과라 한다. 여러 사람이 커다란 방에 모여 토론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만약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만 한 방에 모여 있다면, 겉으로는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생각만 반복해서 듣는 셈이 된다. 마치 자기 이야기의 메아리만 듣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메아리의 방’이라고 부른다. 메아리의 방 효과는 이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인공지능에 의해 작동되는 정교한 추천 시스템은 문제를 악화시킨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에만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일단 어떤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게 되고, 반대 주장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만약 메아리의 방에 갇혀 자기 생각과 반대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면 생각을 발전시키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어떻게 하면 편리한 인공지능 추천 시스템을 활용하면서도 사고의 편협성을 만들어 내는 메아리의 방을 만들어 내지 않을지 고민해 볼 일이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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