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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9 (월)

[특파원리포트] 항미원조 전쟁과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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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美와 충돌 땐 6·25전쟁 거론 / 美에 맞선 中 의지로 대외 선전 / 중공군 피해 100만 육박한 전쟁 / 마냥 내세울 수 있는 전적 아냐

중국 정부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무원, 중앙군사위원회 등 3곳 명의로 중국군 참전 생존자들에게 기념훈장을 주기로 했다. 군인은 물론 의료·운송·통역·전후 복구 등에 참여했거나 신문기자, 작가 등으로 참전한 사람도 대상이다. 오는 10월부터 훈장이 수여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미국이 전방위 봉쇄 조치를 펼치는 가운데 나온 이번 조치는 미국에 맞선 중국의 자신과 의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세계일보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


중국은 미국과의 결전 의지를 강조하고 싶을 때 종종 6·25전쟁을 거론한다.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일 때도 중국 중앙방송(CCTV) 등 관영 매체는 6·25전쟁 영화와 드라마를 잇달아 방영했다.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을 놓고 미국의 압박이 시작되자 샤바오룽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주임도 지난 5월 양회(兩會)에서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때도 미국은 중국을 물리치지 못했다. 지금의 중국은 훨씬 더 강하다”고 말했다. 양보보다는 투쟁을 강조한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2017년 중국군 건군 90주년 경축 대회 연설에서 “인민해방군이 항미원조 전쟁에서 승리해 국위를 떨쳤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은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른다. “북한을 도와 미국에 대항한 전쟁”이라는 의미다. 역사학자인 진충지(金?及) 베이징대 교수가 쓴 ‘20세기 중국사 강의’에서는 “미국 군대의 전쟁불패 신화를 깨고, 중화 민족의 자긍심을 향상했다”고 평가했다. 또 “중국인이 과거처럼 업신여김을 당하는 국가가 아니고, 서양인 마음속에 더는 ‘동아시아의 환자’로 각인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6·25전쟁을 바라보는 중국인의 속내가 엿보인다.

중공군이 6·25전쟁에 참전한 것은 1950년 10월 무렵이다. 인천상륙 작전으로 승기를 잡은 한국군과 유엔군이 북상해 한반도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다. 참전 직후 공세를 벌여 유엔군과 한국군에 큰 피해를 줬다. 총 다섯 차례 대규모 공세에서 전선을 전쟁 발발 전으로 되돌렸다.

6·25전쟁 이야기를 다룬 미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저서 ‘콜디스트 윈터’에서는 평안북도 운산과 군우리 등의 전투에서 미군이 중공군 매복으로 병력을 잃고 허둥지둥 후퇴하는 장면이 자세히 나온다. 미 2사단 일부 연대는 절반 이상 병력을 상실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세계 최강 군대라 일컬어졌던 미군도 간담이 서늘해졌을 만하다.

당시 중공군은 야습과 매복, 우회, 포위 등 변칙 전술에 매우 강했다. 수십년에 걸친 군벌 난립과 국공 내전, 항일전쟁 등을 거치며 전투 경험이 풍부했다. 특히 낮보다는 밤에 강했고, 우회와 포위를 위한 행군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피리와 꽹과리 소리를 울려대며 압도적인 병력으로 밀어붙이는 전례 없던 전술에 유엔군은 초기에 기선을 제압당했다.

중공군의 참전은 한국 정부에 있어서는 통탄할 만한 뼈아픈 대목이다. 거의 무너져가던 북한 김일성 정권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작금의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 문제 등 복잡하게 얽힌 남북문제를 잉태한 한 원인이 됐다.

그러나 중공군은 막판 뒷심이 부족했다. 1951년 2월과 5월 각각 4차와 5차 공세를 끝으로 더는 대규모 공세를 벌이지 못했다. 이미 중국군의 새로운 전술에 적응된 미군과 유엔군, 한국군에게 중부와 동부 전선에서 호되게 당하기도 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6·25전쟁 중공군 사망자는 14만8600여명에 이른다. 유엔군(미군 포함) 사망자는 3만7902명이다. 거의 4배나 많다. 70만8400여명에 이르는 부상자까지 포함하면 중공군 병력 손실은 거의 100만명에 육박한다.

중공군이 사망자가 많은 것은 변칙적인 전술 속에서 병력 손실을 감수하며 압도적인 병력 차로 밀어붙인 탓이다. 아군의 희생을 담보로 한 전투가 많았던 것이다. 중국이 마냥 ‘내세울 수 있는 전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우승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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