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이 10일 오후 11시 별세했다. 사진은 백선엽 장군이 지난 2018년 11월 열린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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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4성 장군…간도특설대 친일행적 논란도
[더팩트|이민주 기자] 6·25 전쟁 영웅이자 창군 원로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10일 오후 11시 향년 10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백선엽 장군은 지난 1920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났다. 1941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괴뢰국인 만주군에서 소위로 임관했다.
1943년부터는 일제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간도특설대는 만주국 북부에 있던 사회주의 계열 민족 해방 세력 팔로군, 동북항일연군, 조선의용대와 만주 북서부에 잔존해 있던 대한독립군단을 토벌하기 위한 특수 목적을 띈 독립군 토벌 부대다.
해방 이후에는 국군에 입대해 크게 활약했다.
백 장군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국군에 입대해 국군 제5연대장과 육군본부 정보국장을 지냈다. 1950년 4월에는 개성을 관할로 하는 1사단장으로 부임해 1951년까지 사단을 이끌었다.
육군본부 정보국장을 지낼 당시에는 남로당 빨치산 토벌과 군 내 좌경 인사 숙군에 주력했다. 그는 당시 남로당 총책으로 지목돼 사형 선고를 받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구명하기도 했다.
6·25 전쟁에서도 전공을 세웠다. 백 장군은 낙동강 다부동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한미동맹재단 창립식에 참석한 백선엽 장군 모습.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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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다부동 전투 당시 북한군에 밀려 패퇴 직전인 아군을 향해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고 말한 일화가 유명하다. 결국 이 전투에 승리하면서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할 수 있었다.
1951년에는 중공군 춘계 공세를 막아 동부 전선 붕괴를 차단했다. 이후 지리산 일대 빨치산 토벌 작전에도 나섰다.
백 장군은 이러한 공고를 인정받아 1952년 7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다. 이듬해인 1953년 1월 전공을 인정받아 우리 군 최초 4성 장군이 됐다.
정전 회담 때는 한국군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으며, 1959년 합참의장을 지낸 뒤 1960년 5월 31일 예편했다.
대장으로 예편한 후에는 주중 한국대사와 교통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장관 재직시절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주도했다.
6·25 전쟁영웅으로 불리는 백 장군이지만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이력으로 친일행적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이 때문에 백 장군은 지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친일행적에 대한 논란으로 백 장군의 사후 국립현충원 안장 여부를 놓고 논란이 불거졌으나, 최종적으로 장지는 대전 현충원으로 정해졌다.
백 장군의 유족은 부인 노인숙 씨와 아들 남혁·남흥 씨, 딸 남희·남순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15일 오전 7시다.
minj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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