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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기자가만난세상] 부모님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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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앞에 학생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돼지국밥집이 있었다. 입맛 또한 비슷한 가장 친한 친구 둘과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이 집을 찾았다. 반주 한 잔만 하자, 는 누군가의 제안으로 시작된 낮술이 2차, 3차로 이어지기도 했던 건 대학 시절의 꽤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 아내가 사 온 돼지국밥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돼지국밥집의 낭만’을 들려줬다. 20년도 더 된 아빠의 옛 추억에 아이들의 반응은 심드렁하기 짝이 없었다.

일부러 아이들에게 나의 옛날을 이야기해 줄 때가 있다. 계기가 있으면 두서없이 꺼낸다. 돼지국밥집 때의 그것처럼 아이들은 대개 묻지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다는 반응이지만 개의치 않는다.

세계일보

강구열 문화체육부 기자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를 즐겨본다. 가족이지만 서로를 모르고, 혹은 가족이기 때문에 숨겨서 오해하고, 갈등한다는 드라마의 전제가 근사한 연기, 연출과 표현돼 꽤 설득력이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자주 떠올린다. 낳았고, 뼈빠지게 일해 키웠고 40년 넘게 한결같이 가장 나를 응원하고 걱정해주는 두 사람이지만 그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다.

따지고 보면 아는 건 나의 부모로서의 그들이 거의 전부다. 그들의 부모에겐 어떤 자식이었을지, 어떤 형제이며, 친구였을지 잘 모른다. 최초의 꿈과 학창 시절의 성적, 서로를 만나기 전 연애 경험과 첫인상 등등 모르는 것투성이다. 이런 게 궁금해진 것도 이제는 일흔을 넘긴 두 양반이 언젠가는 영영 떠나시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최근의 일이다.

부모란 너무 당연한 존재여서일까. 언제나 부모였고, 앞으로도 내내 부모일 터라 부모 아닌 그들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고,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듯싶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 자식이나 그런 거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으나 관계의 좋고, 나쁨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듯하다. 세상의 많은 자식들이 나처럼 부모에게 너무 무심한 거 같다는, 드라마를 보면서 좀 더 확신하게 된 생각이다.

돼지국밥집의 낭만 같은 옛날의 아빠 이야기를 일부러라도 들려주는 건 아이들에게 나를 알리고 싶어서다. 분명 처음엔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 되겠으나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그들의 이야기를 물어볼까도 싶다. 부모, 자식 간에 그렇게 오가는 이야기가 대단한 게 많을 것 같진 않다. 평범하게 살아온, 누군가 듣는다면 필시 그저그런 삶이었구나 싶은 이야기가 대부분일 것이다. 서로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다고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하는 극적인 일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온전하게 기억하고, 기억되길 바랄 뿐이다. 너무 당연한 존재라는 이유로 부모가 자식의 머릿속에 부모로만 기억되는 건 어쩐지 쓸쓸하다. 부모 역시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친구였으며 부부의 인연을 맺기 전 각자 어떤 남자와 여자를 만나 사랑을 했을 피 뜨거운 젊은이였다는 걸 아는 것, 근사하지 않은가. 그렇게 부모를 향한 애정과 이해가 깊어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에서처럼 말이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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