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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철원 고석정, 그 깊은 피안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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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풍파 견딘 외로운 돌 정자 / 괴걸 임꺽정의 은신처로 유명

최근 몇 달 사이에 ‘경원선 따라 산문여행’이라는 테마로 책 한 권을 만들어 왔다. 경원선이라면 서울에서 원산까지 동북쪽으로 올라가는 철로 길로 지금은 철원 월정리에서 끊겨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길이 되어 있다.

철원으로 방향을 정했지만 사실 이 ‘남한’ 땅의 북쪽 한계선 근방을 정작은 잘 알지 못했다. 임꺽정 설화가 숨 쉬는 철원 고석정 갔다 돌아올 때 운 좋게 경원선 길을 되짚어 올 수 있었다. 월정리역은 군사분계선 안에 있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있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없던 6·25전쟁의 백마고지역에, 철도 중단점 표지판 있는 신탄리역, 대광리역 순으로 경원선 역들이 늘어서 있고 연천, 동두천 등으로 연결되어 경원선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남북한 상황이 바뀌면 이 철길이 기지개 켜고 살아날 일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세계일보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서울 은평구 연신내는 북쪽으로 올라가기 좋은 길목이다. 여기서 의정부 쪽으로 방향을 잡아 올라간다. 오늘의 목적지는 앞에서 잠깐 말했듯 철원 고석정(孤石亭), 수 년 전에 학생들과 함께 답사 길에 들렀다 그 고즈넉한 풍취에 마음이 심히 ‘찔렸던’ 기억이 생생했다. 폐허로 남은 철원 ‘노동당사’도 물론 볼 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이념’의 상처의 철원이요, ‘자연’의 철원은 고석정에 있다. 고석정, 이 ‘외로운 돌 정자’는 대교천이라는 한탄강 지류에 위치에 있어 지구대를 따라 흐르는 한탄강의 현무암 최적층과 그 아래 화강암층의 형세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한반도는 조만간 들보다 길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이 북쪽에도 길이 얼마나 잘 뚫렸는지 4차선, 2차선 새 도로에 다니는 차들은 조만간 몇 대 없을 지경이다. 서울에서 불과 두 시간도 안 되는 거리지만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 탓에 포천 지나자 길은 한산해진다. 철원이 가까워지자 인삼밭이 보이고 어느 순간에 큰 다리가 나타나는데, 아하, 이 밑을 흐르는 강이 바로 임진강으로 합류되는 한탄강(漢灘江), 큰 여울이다.

한탄강 하면 생각하는 것 하나. 대학 시절에 ‘지양’이라는 인문대 편집실 동아리에 속했는데 후배들과 함께 이 강으로 나들이를 갔다. 갈 곳은 강 건너 봉우리인데 다리는 멀리 위에 있어 한참을 돌아야 했다. 갈 때는 돌아서 갔는데, 돌아올 때는 몹시 지쳐 꾀를 내기를 깊지 않아 보이는 강을 바로 건너보기로 했다. 무서운 것이 한탄강 여울임을 이때 제대로 알았다. 발목에서 정강이로, 허벅지로, 이윽고 배에 가슴까지 올라오는 수심에 물살이 그렇게 셀 수가 없다. 일곱 사람이 서로 손으로 연결해서 물살을 견뎌보기로 하는데, 누구 한 사람이라도 넘어졌을 지경이면 하마터면 일찍 황천 행을 할 뻔했던 것이다.

나는 높은 다리 한쪽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옛날 일을 떠올리며 저 아래 굽이쳐 흐르는 한탄강 줄기를 바라본다. 깊게 파인 추가령 구조곡의 현무암 풍경이 흐르는 물과 어울려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때 국사학과 후배 ‘양동’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일학년생 ‘일도’는 그만 일찍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이제 얼마를 더 가자 바로 한탄강 지질공원, 그리고 고석정이다. 벌써 점심 때, ‘어랑 만두’라고, 함경도식 만두를 빚는 집에서 아침부터의 공복을 서둘러 때우고 수 년 전 기억을 더듬어 고석정 돌바위를 찾아내려간다. 한탄강 대교천의 현무암 퇴적층 깊게 파인 만곡에 화강암 돌바위, 소나무 몇 그루가 솟아 있다. 이름 하여 임꺽정이 여기 숨어 있었다 하고 강 건너에 그가 기거하던 석굴도 있다 하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조선왕조실록’의 명종대 기록에 임꺽정이 등장하고 그 후 몇 번 더 등장하는데, 이를 널리 알려진 장편소설로 연재한 이가 바로 벽초 홍명희였다.

이 고석정의 수려하고도 한적한, 아니 고적한 풍경과 괴걸 임꺽정의 설화는 어딘지 모르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신라 때 처음 세웠다는 고석 정자에서 피안 세상 같은 강 아래 깊은 ‘지하’ 세상을 한참을 들여다본다.

아하, 이 근처에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도피안사(到彼岸寺)’가 있더랬다. 거기 주지 스님이 스물여섯 해나 그 ‘피안에 이르는 절’을 ‘자연’으로 가꾸셨다던가. 고석정의 고적함은 차마 발길 돌리지 못하게 하건만 이윽고 몸을 돌려 저 아래 피안의 기억을 떨어내고 땅위 세상으로 천천히 걸음 옮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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